소울푸드

by 우아

결혼 후 종종 시어머니를 뵈러 가면, 시어머니는 김치부침개 반죽을 해놓곤 하셨다. 간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부침개로 나에겐 색다른 레시피였다. 명절 때나 이용하는 대형 팬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부침개를 부쳐야 했다. 누구를 위한 음식이냐. 바로 시어머니의 귀한 아들, 나의 남편을 위한 음식이었다. 남편은 강원도 인제에서 군 생활을 했단다. 그때 당시엔 아침 7시에 인제에서 출발하면 저녁 7시에나 군산에 도착했다나. 그러면 그 고된 여정을 위로하듯 대기하던 것이 바로 저 김치부침개였다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몇 장씩 먹었다는 그 김치부침개. 그런데…. 군 제대한 지 한참이나 지난 아저씨가 왜 여태까지 이걸 먹어야 하는지 갓 결혼한 새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고기가 들어간 부침개는 잘 익지 않았다. 그래서 한 장을 부치는데도 엄청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반면, 그 결과물을 먹어 치우는 데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이라 그 속도를 맞출 수가 없었다. 누구는 땀 뻘뻘 흘리며 부치는데 누구는 날름날름 받아먹기만 하는 그 구시대적인 장면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겠나. 시어머니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랑스러운 막내 아들 곁을 떠나 천국으로 가셨고, 나의 남편은 맹목적으로 수십 장의 김치부침개를 해 줄 이를 잃었고, 나는 그 대를 이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남편의 소울푸드인 간 돼지고기 부침개는 전설처럼 레시피만 남긴 채 나의 대에서 맥이 끊기고 말았다. 애도를 표한다.

나의 큰아들은 사지를 움직이는 걸 제일 귀찮아한다. 원래도 느릿느릿 나무늘보 친구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들고부터는 더 한다. 뭔가를 먹는 것도 참으로 저처럼 먹는다. 남들이 바빠서 주변에서 분주히 종종거려도 이 아이는 제 속도에 맞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식을 먹고 있다. 속이 터진다. 그러나! 달걀후라이 앞에서는 기꺼이 사지를 비롯하여 입주변 근육을 속히 움직인다. 동생들에게 뺏길까 봐 팬케이크처럼 쌓인 꼬들꼬들한 제 취향의 달걀후라이를 낼름낼름 잘도 먹는다. 흡사 진공 흡입기 같다. 양이 차지 않으면 기꺼이 그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직접 요리해서 먹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제일 많이 소비되는 단백질은 단연코 달걀이다. 말도 못 하게 많이 먹는다. 달걀후라이 마니아인 큰아들에게 나는 항상 경고한다. “닭 있는 곳에는 절대 가지 마라. 너한테 달걀 냄새 날 것이다. 닭들이 지 새끼인 줄 알고 무섭게 쫓아 올 것이야. 조심해라!”

둘째 아들의 소울 푸드는 간장게장이다. 이제 초딩 6학년의 입맛치고는 참 올드하다. 신기하게도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유일하게 못 먹던 음식이 바로 간장게장이었다. 그 간장 이 엄청나게 짜서 냄새도 못 맡았었다. 그랬는데 이 아이가 군산 고모 댁에만 가면 맡겨 놓은 듯 간장게장을 찾는다. 그러면 귀히 모셔진 간장게장이 둘째 앞에 놓인다. 둘째는 아주 옹골지게 살이 찬 게장을 손에 쥐고 쫍쫍 쭙쭙 맛나게도 먹는다. 밥도 싹싹 비벼 먹는다. 그러고는 반드시 냉동고에 남아 있는 간장게장을 고모가 싸주셔야 집에 올 수 있다. 고모와 조카가 죽이 척척 맞는다. 다 계획이 있는 놈이다.

막둥이는 셋째답게 비주얼이 아주 완벽했다. 큰 눈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냥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귀여움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역변했다.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해 주시던 등갈비 김치찜을 먹고 싶다는 주문에 나는 손 크게도 등갈비를 무려 세 팩이나 넣고 대형 냄비에 등갈비 김치찜을 해 주었다. 그것이 막둥이의 잠자던 내면의 식욕을 깨우고 말았다. 양손에 야무지게 비닐장갑을 끼고, 먹고 남은 뼈를 담을 그릇까지 준비한 뒤,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밥을 듬뿍 덜어 놓고 시작했다. 먹는 모습이 너무 복스러워 그냥 둔 게 크나큰 실책이었다. 그 뒤로 막둥이는 등갈비 김치찜을 비롯한 모든 고기류의 마니아가 되었고 채소류에는 새우눈 레이저를 쏘기에 이르렀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후덕해져 버렸다. 뚜렷했던 이목구비가 토실토실 살에 묻혀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초딩 아들의 뱃살을 걱정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고기도 적당히 먹어야 해, 그 귀여운 돼지를 어떻게 그렇게 맛나게 먹을 수 있냐, 소가 환경오염을 얼마나 시키는 줄 알아? 너 곧 수상 안전 체험이야!! 수영복 빤쮸만 입어야 한다고!!!”까지 갖은 구슬림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온갖 종류의 고기류를 섭렵하고 다닌다. 무서운 아이다. 우리 집 높디높은 엥겔지수의 주범은 이 아이다.

그렇다면 나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엄마가 해 주시던 깻잎 지짐? 김치찜? 마늘종 볶음? 무청 시래기 지짐? 음…. 우열을 가릴 수가 없구먼.’ 그러다 문득 내가 집어 든 텀블러를 들여다보았다. “찾았다! 나의 소울푸드!” 이것을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내가 제일 좋아하고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치면 이것만 한 게 없다.

나는 둘째와 셋째를 같은 날에 낳는 묘기를 부렸다. 둘은 9월생이다. 그 말은 한여름에 만삭이었다는 것이다. 길고도 긴 여름. 여기서 내가 정말 하소연을 안 할 수 없다. 둘째 때, 나는 딱! 박00정부의 에너지 절감 정책을 만나 직장에서 한여름,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가빠지는 그 쨍한 더위에 에어컨도 마음대로 못 틀고, 개인 선풍기 하나 얻는데도 투쟁에 가까운 실랑이 끝에 쟁취하고, 심지어 교실이 4층인데 엘리베이터도 맘대로 못 타는 서글픈 시절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영어 전담 교사라는 교과 특성상 쉴 사이 없이 말을 해야 했다. 항상 입이 더웠다. 갈증이랑은 좀 다른 그 입 마름.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얼음이었다. 빈혈이 있냐고? 물론, 쬐끔 있다. 그러나 나의 얼음 사랑은 그것과는 별개다. 나는 입안이 더웠고 얼음은 그 더위를 그나마 달래주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었다.

문제는 얼음을 입안에 물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 말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어쨌냐. 얼음을 깨 먹었다. “아이구야! 그러면 안 돼~”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요기조기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 얼음을 깨 먹는다는 것은 오복 중 하나인 치아를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란 말인가. 더위에 방법이 그것뿐인데. 하…. 그렇게 둘째를 거쳐 셋째까지 근 5년을 여름이면 얼음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얼음을 먹으면 입안의 화기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살 것 같았다.

그 후로 어느 해, 나를 열~받게 하는 학생을 딱! 만났다. 교권이 지하 깊숙이 처박힌 이 시대에 교사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현실에서 내 속에 천불이 솟아 올랐다. 그 불을 잠재워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1년 내내 한겨울에도 얼음을 먹기 시작했다. 정수기에서 투두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얼음이 깨 먹기 딱 좋았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오드득오드득” 내 분노의 얼음 해체 작업은 뭔가 타인에게도 쾌감을 주는 듯했다. 둘째와 셋째가 내가 먹는 얼음을 같이 먹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다. 꼭 둘째와 셋째만 내 얼음을 탐낸다. “안돼~~~ 너희는 150살까지 살아야 해~ 임플란트를 몇 번이나 하려고 그래~”

엄마란 존재는 자식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지만, 나는 얼음만큼은 포기 못 했다. 대신 아들들이 넘보지 못하게 내가 다 미리 먹어버리는 묘안을 찾아내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는 얼음을 살살 녹여 먹여라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매일 아침, 직장에 출근과 동시에 텀블러 가득 우두둑 받아내는 얼음을 보면 뭔가 묘한 긴장감과 쾌감을 동시에 느낀다. 투명하고 맑은 보석 같은 그것! 사랑한다. 내 소울푸드 얼음아!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호 3번과 통곡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