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인구가 줄어든 것이 사회적으로는 큰 이슈가 되었지만 나에겐 횡재로 돌아왔다. 도서관의 ‘바로대출서비스’로 따끈따끈한 신간 도서를 서점을 통해 바로 받아 읽어 볼 수 있다. 얼마나 신박하고 알뜰한 제도인지 너무너무 만족스럽다.
처음부터 책에 대한 탐욕을 부린 건 아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어서 도서관에 갔다. 이책 저책 읽다 보니 ‘육아에 대해서는 일자무식한 인간이 귀한 생명을 제대로 건사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말 못 하는 아기의 표정 신호, 울음 신호, 안색 신호 등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울면 기저귀를 들춰볼 뿐이었고, 안아 달래줄 뿐이었고, 젖을 물릴 뿐이었다. 허둥지둥 실수연발 하는 중에 둘째가 태어났다. 삐뽀삐뽀 119를 베개 옆에 모셔두고 애가 아프면 들여다보고, 애가 잘 크는지 걱정되면 들여다보고. 삐뽀삐뽀 이유식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며 각종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 아이들의 동화책을 빌려서 나르고 육아서를 빌려서 읽고. 그러다 보니 책 욕심이 마구 치솟았다. 머릿속에서 정리도 되기 전에 다른 책을 읽어 욱여넣기 시작했다. 와~ 우주의 빅뱅도 이만큼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거다. 내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내 아이들은 실험체 1, 2호였고. 그러다 셋째가 태어났다. 이럴 수가. 3호가 생기 다니! 더더더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서관과 서점 관계자분들과 친밀도가 높아졌다.
가족 모두의 명의로 대출하다 보니 책이 제법 많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의무감에 책을 읽어 나가고, 개중에 다 못 읽은 책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마음으로 반납하기도 했다. 그래도 새 책을 빌리러 가는 그날은 그렇게 산뜻할 수가 없다. 발이 구름이라도 탄 듯 둥실둥실. ‘오늘은 어떤 책을 빌려 와 볼까?’ 그 기대가 내 삶의 기쁨의 5할은 되었을 것이다.
짜잔~ 서점에 내가 신청한 책들이 쫙~ 꽃혀 있는 책장을 보는데, 심장이 덜컥! ‘이게 뭐지? 이OO 님! 응? 우리 엄마 이름이잖아?’ 바로 아래 책장에 엄마 이름으로 책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 책을 꺼내 한참 들여다보았다. ‘분명 우리 엄마 이름인데. 우리 엄마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드디어 하늘나라와 교신이 허락된 거야!’ 수상한 엄마를 외치다 겨우 이성을 붙잡았다.
‘누굴까. 엄마와 이름이 같은 이 사람은? 우리 엄마가 읽은 책이라고는 성경책이 다였고, 뭔가 들여다본다 싶으면 마트 전단지였는데. 그렇게 책을 읽어보라고 해도 안 읽던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 소녀소녀한 책을 읽는 걸까. 아니지. 내가 엄마에게 이런 소녀소녀한 책 좀 권해 볼 걸. 엄마가 내 아들들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 읽어줄 때, 엄마가 좋아할 만한 책도 슬쩍 한 권씩 들이밀어 볼걸. 그림책 「엠마」를 알았을 때 ’엄마 생각 난다‘에서 끝내지 말고 엄마에게 읽어줘 볼 걸. 정신없다고, 상황이 여의찮다고 핑계대지만 말고 그냥 한번 해볼 걸. 그럼, 우리 엄마도 자기만을 위한 시간 한번은 가졌을 텐데. 내가 내 자식 키운다고 혼자만 읽고 내 자식들만 읽히느라 우리 엄마에겐 이런 좋은 책 한번 선물해 주지 않았구나. 나만 좋고 말았구나.’ 늦어도 한참 뒤늦은 후회다.
‘이OO 님. 뉘신지는 몰라도 좋은 책 많이 읽어주세요. 그냥 우리 엄마 몫까지 다 읽어주세요. 그리고 그 소녀 감성 많이 누려주세요. 우리 엄마는 그럴 여유가 없었거든요. 급하게 떠나느라 그러지 못 했어요.’
서점에 가서 이OO 님의 이름을 볼 때마다 나는 간절히 바라본다. 꼭 그분이 우리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손으로 한번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그분이 아시면 깜짝 놀라시겠지만 나 혼자 애틋하고 간절하다.
‘저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그냥 계속 이쁘고 감동적인 책 많이 읽어주세요. 우리 엄마 몫까지요. 부탁드립니다. 이OO 님.’
그런데, 요즘 서점 책장에 그분 이름이 안 보인다. 무슨 일 있으신 건가, 걱정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