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by 우아

생김치를 좋아한다. 남편은 묵은지를 좋아했다. 생김치를 좋아하니 생김치를 내놨고 남편은 묵은지를 찾았다. 필요한 사람이 찾아 먹으면 될 것을 투정을 부렸다.

한때는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김치뿐이겠는가. 언젠간 간장, 된장, 고추장 다 배울 거라고 자신만만했었다. 40대쯤 되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내게 비법 전수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꿈꿨었다.

40대인 지금의 나는 김치를 사 먹는다. 생김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비교적 만족스럽다. 아들들도 제법 잘 먹는다. 그때그때 취향껏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묵은지 타령을 하던 남편도 이젠 겉절이에 만족하는 듯하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점과, 김치가 좀 매울 때가 있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다.

문제는 김장이다. 처음 결혼할 때, 둘째 시누가 김장 걱정은 말라 하셔서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시누가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 김장도 접으셨다. 원망이나 서운함 같은 건 없었다. 대신 김장 김치 유목민 신세가 되어 곤란하다. 그때그때 입가심할 김치는 좀 비싸더라도 사 먹으면 되는데 먹성 좋은 아들들 키우기엔 생김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나 묵은 김치를 볶거나 지지거나 찌개라도 해야 하니 김장 김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웬만해서는 남에게 아쉬운 말을 잘 안 하는데 반찬거리에서는 주저함이 없다. 김장철에는 더욱 분주하다. 우리 집 사정을 어필하면 여기저기서 김치를 주신다. 한국 인심 죽지 않았다. 그런 김치만 모아도 한두 통은 됐다. 최근 몇 년은 손 큰 교장선생님 덕에 김장 김치가 넉넉해서 너무 좋았다. 감사했습니다. 교장선생님!

어느 해부턴가 큰아들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김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재작년 그쯤. 사연이 있어 혼자 집에 있게 된 날. 이웃집 선생님 댁에 가서 김장을 하고 왔단다. 몇 포기나 바르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치 얘기보다 수육이 맛있었다고, 선생님 댁 수육이 최고라고 침을 꼴딱꼴딱 넘기고 또 넘겼다. 그 뒤로 김장철만 되면 그 집 김장 날을 헤아렸다. 김장 날이 평일이면 학교에도 안 가고 김장을 돕겠다고 했다. 이런 젯밥에 눈먼 놈 같으니라고!

그 아들 덕에 요새는 김장철에 간 한 배추도 팔고, 맛있는 양념도 팔던데 사서 한번 해볼까 하다가 그냥 접었다. 그렇게 해도 우리 집만의 김장 김치 맛은 안 날 텐데 뭔 재민가 싶어서 접어버렸다. 내가 김장하는 법 배울 여유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고 급히 떠나버린 엄마가 얄미워서 접어버렸다. 우리가 지금 먹는 김치 맛이 정체 모를 뒤죽박죽 김치여서 아들들에겐 좀 미안한데 집에서 담근 김치마저 기성품 맛이 나면 너무 슬플 것 같아 접어버렸다. 나는 알고 먹었던 우리 집만의 김치맛을 우리 아들들은 모르고 크게 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그냥 어디서 온 것이든 잘 먹으면 됐다 위안하며 오늘도 아껴둔 김장 김치를 꺼내 볶아본다. 볶은 김치에는 두부라며 맛나게 먹어주는 아들들이 있어 울적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달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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