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잃은 여자

by 우아

먼저 천국에서 행복하실 시어머니께 죄송하단 말씀으로 시작하고 싶다. 굳이 이 글을 써야 했냐고 물으실 것 같아 선수 치는 것이다. “어머니! 저도 생각이 많았습니다.”

내 생일은 음력 5월 25일이다. 내게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뭐라 묻는다면 단연코 5이다. 유니크하고 퍼펙트하고 엘레강스하기까지 한 숫자 중 단연 으뜸이다. 그렇게 내 생일의 중요도와는 상관없이 내 생일에 자그마치 두 개나! 들어가 있는 5란 숫자에 나는 푹 빠져 있었다. 2학년이 되어 구구단을 외울 때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며 5단을 단숨에 외워버릴 정도였다. 오오이십오. 입에 척척 들러붙는 이 상쾌한 라임! 나의 머릿속에 5는 행운의 숫자였으며 완벽한 숫자였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 나는 나보다 한 살 많은 남편과 꽃 피는 봄날, 결혼식을 올렸고 그렇게 결혼 후 인생 대 격동의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내 자부심이었던 오오이십오 그날! 그날이 꼭 나만의 생일이란 법은 없었다. 그렇다. 그날은, 그날은! 시댁의 최고 어른이신 내 시어머니의 생신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서른 살 생일을 시어머니와 함께 보내게 되었고, 직장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주말에 모여 생신 파티를 한다는 현실적인 방안에 감사하며 간신히 나만의 생일을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씩 생일이 주말에 당첨되면 그해의 나는 시어머니의 생일에 밀려 그냥 같은 날 생일인 사람 1인이 되어버리는 찝찝함을 견뎌야 했었다.

이렇게 뭔가 온전치 않고, 뭔가 2인자 같은 생일날이었지만 꼬박꼬박 나는 오오이십오 일에 생일을 챙겨 먹었고 마흔여섯, 그해도 내 생일 즈음이자 나의 시어머니 생신 즈음. 시어머니는 급하게 인근의 자녀들을 불러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고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고 곱게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워낙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 정신없는 상태로, 삼일 내내 하늘이 구멍 났나 싶을 만큼의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려 아주 고된 장례 절차를 밟고 무더운 여름을 맞이했다.

그리고 1년 후, 비로소 나는 알게 된다.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놀~~랍게도 본인의 생신이며 나의 생일인 오오이십오 일을 제삿날, 즉 기일로 남기시고 이 세상을 떠나셨음을…. 무슨 며느리가 시어머니 기일도 모르느냐 나무라시려면 나무라시라. 나는 그저 많은 시누이에게 의지하는 나약한 올케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며, 그 덕에 나는 40년 넘게 챙겨 먹은 생일을 시어머니 제삿날로 지내게 된 가련한 여인이라는 점을 알아주시라.

내가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그냥 ‘운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보다 비통한 심정으로 운명을 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건 ‘운명’이다. 그리하여 나는 인생 46년 만에 생일을 바꿔 세게 된다. 낯설고도 낯선 양력 생일을 찾아 남편에게 알리고, 아들들에게, 동생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린다. 그러다 46살 내 생일은(왜 다시 46살이냐? 우리의 대통령께서 나이를 한 살 깎아 주었다) 당사자인 나도 잊고 지나가 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 남자들! 다 필요 없어!” 그러나! 음력 오오이십오 생일로는 다시 챙겨 먹지는 않았다. 그냥 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까짓것, 이 나이 먹어 생일이 뭐 중한가.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데. 남편이고 자식이고 다 잊어버렸는데! 그냥 설날 때 생일 떡국까지 한 그릇 더 먹고 치워 버리지 뭐!’ 그러면서도 매년 내 생일만큼은 꼬박꼬박 챙겨주던 엄마의 빈자리를 이렇게 또 느끼는 나란 존재는 아직도 어른이 안 되었나 보다. 세상은 나에게 자꾸 어른이 되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어른이 아닌가 보다. 가슴이 시리다.

생일을 잃은 나는 쓸쓸하다. 세상에 생일 쇠는 어른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도 내 생일이었는데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날이었는데. 손에 쥔 소중한 사탕을 빼앗긴 것 마냥 좀 억울하고 서럽다.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나는 좀 서글프다. 같이 서글퍼해 주는 이 없어 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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