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근히 규칙적인 여자다. 눈 떠서부터 잠들기까지 나만의 루틴이 있어서 그게 흐트러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혼자 살 땐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여럿이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화성 출신 그분들. 너무 안 맞는다.
정리는 못 하는데 청소에는 민감하다. 결혼 초, 피곤해 쓰러지기 직전인데도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화를 냈다. 그럼 자기가 하면 될 일 아닌가? 딱 화만 낸다. 그러니 내가 계속할 수밖에. 나는 나만의 루틴에 맞춰 몸이 아파도, 바빠도, 늦은 시각에도 한다. 안 하면 좀 찝찝하다. 숙면에 방해된다. 아침 식사는 꼭 해야 한다. 내 아들들은 아침 입맛을 잃는다는 사춘기가 되어도, 남들이 뭐라 하든 아침엔 뭐든 먹고 나가야 한다. 잘 때는 꼭 잠옷을 입고 잔다. “단잠을 원하십니까? 그럼, 취향에 맞는 잠옷을 입으십시오~” 아들들도 내복이나 잠옷을 입고 잔다. 남편만 빼고. 그분은 예외다. 잠옷으로 갈아입기엔 그분은 항상 피곤하다.
일상적인 루틴만이 다가 아니다. 특정 시기가 오면 특정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아니 본능이 강하다. 2월 말에서 3월 초, 봄바람이 느껴진다 싶으면 꼭 샛노란 색 프리지어 한 단을 사서 꽂아놔야 한다. 집에 프리지어 꽃향기가 퍼지면 봄이 쉬이 올 것 같은 설렘이 느껴진다. 그 프리지어가 피고 지고 말라 버릴 때쯤 되면 봄꽃이 핀다. 나만의 봄맞이 루틴이다. 11월만 되면 은행나무를 살핀다. 정읍의 은행나무가 질 때쯤 가면 닦이다. 전주 향교. 그곳에 가야만 한다. 가면 뭐 은행 구린내가 먼저 반겨주지만 노란 은행잎이 한 줄기 바람에도 마구 흩날릴 때, 거기 서서 그걸 봐야 한다. 냄새에 민감한 우리 둘째는 질색한다. 그래도 꼬셔서 간다. 남편은 버린 지 오래다. 한 해는 사춘기 첫째랑, 한 해는 까칠이 첫째 빼고 순둥이 둘이랑, 한 해는 용감하게 셋 모두 몰고. 가서 겨우 은행잎 떨어지는 장면 한번 보고 후다닥 그네 타러 갈 때도 있고, 길거리 음식 찾아 나설 때도 있지만 나는 꼭 11월의 전주 향교를 눈에 담는다. 올해도 내가 왔노라, 너를 잊지 않고 왔으니, 이곳에 깃든 나도 잊지 말아 달라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와야 가을을 보낼 마음이 든다.
나의 루틴은 곧 내 가족의 루틴이다. 그런데!
변기 뚜껑 닫는 게 그렇게 힘들 일인가? 나는 17년째 외치고 있다. “볼일 보고 나면 변기 뚜껑 좀 닫으라고!” 집에 오자마자 씻으면 얼마나 개운하고 좋은 일인가? 그것 또한 15년째 외치고 있다. “집에 오면 먼저 씻기부터 하라고!” 책 읽고 책꽂이에 꽂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13년째 외치고 있다. “책이 왜 소파 위에 누워 있냐! 사람 앉을 데가 없잖아!” 자기 전에 정신 수양 차원에서 성경 한 장 읽고 자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나는 6년째 외치고 있다. “다 모여! 성경 읽게 다 모여!” 이 정도 하면 습관이 될 만도 한데 화성 출신 그분들은 스스로 하는 법이 없어 참 곤란하다. 누군가는 엄마가 습관을 잘못 들여서 그런다고 하겠지만 나 나름 전문가다. 그런데 집에만 가면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잔디가 무성한 마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한다. “조만간 저 마당 한 편에 나만의 금성을 만들 거야. 이곳 화성은 내가 살 곳이 아니야. 곧 탈출하고 말겠어! 나만의 루틴대로 살아도 한점 불편함 없는, 혈압 걱정 없는 그곳! 내 판타지 속 그곳을 만들고야 말겠어! 나는 그곳에서 여전히 괜찮은 여왕이 될 거야. 나만의 하얀 장미를 키우겠어!”
오늘도 나는 17년째, 15년째, 13년째, 6년째 외치고 또 외치며 화단의 하얀 장미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기다려! 내가 곧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