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과묵한 놈이 한 놈이 없어

by 우아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지인 중 한 분이 아들만 셋이셨다. 그중 둘째가 도통 집에선 말이 없는데 밖에선 그래도 인싸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할 일을 스스로 너무 잘해서 중요한 일도 돌고 돌아 남에게서 듣는다고 했다. 그게 대학 입학 문제였던가….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셋 중 하나가 독립적이라 나머지도 비슷하게 큰다고 하면서 자랑하셨다. 그런데 나는 좀 서운할 것 같았다. ‘아니~ 밖에서 얘기할 거 왜 집에서는 안 해? 부모나 형제가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왜 부모 형제한텐 제일 중요한 일도 얘기 안 해줘서 남한테 듣게 해? 이건 독립적인 게 아닌 것 같아. 내 자식이 그러면 나는 너무 서운할 거 같아….’

그 사연에 너무 몰입하여 자기화한 나머지 나는 삼 형제의 모친이 되었다. 그리고 내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나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수다스럽다. 그렇다면 그 수다스러움의 유전적 요인은 누구에게 있느냐? 맹세코 나는 아니다. 나는 직업상 말을 많이 할 뿐 수다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결혼 초, 나의 남편은 나의 친정 분위기를 너무나 어색해했다. 불편해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삼 남매와 부모님까지 다섯에 사위인 나의 남편까지 여섯이 앉아 있는데 조용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화를 안 했느냐. 아니다. 할 말 다 했고 웃을 거 다 웃었다. 그런데 남편은 가시방석 앉은 듯 안절부절못했다. 그 이유를 시댁 가족 모임에 가서 알게 되었다.

나의 시댁은 6녀 1남의 대가족이다. 나의 남편은 그중에서도 꼴찌 1남. 놀라지 마시라. 내가 세상 물정을 좀 몰랐다. 7남매 모두 가정을 이루었고 우리가 꼴찌였으니 모든 가족이 모이면 너무 많은 대가족이라 나와 나이가 비슷한 조카도 여럿 있다. 그 조카 중 한 명은 나와 같은 해에 아이를 출산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된 동시에 할머니도 된 것이다.

아무튼 대가족이 어른들만 모여도 대충 열댓 명. 거실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그들은 처음엔 한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작은 소그룹이 생긴다. 그리고 전혀 정치 얘기가 아닌데도 정치 얘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점점 목소리가 높아진다. 서로 내가 먼저 말하겠노라, 자기 말을 들으라며 다른 사람들 말을 막는다. 워낙 성량이 좋은 집안이라 처음엔 정말 진짜로 싸움 나는 줄 알았었다. 시장통도, 명절 시장통 같은 그런 분위기여서 겁 좀 먹었었더랬다.

이런 양쪽 집안의 성량과 수다량 차로 인하여 우리 부부는 한동안 각자 집안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고생 좀 했다. 남편은 속삭이듯 대화하는 우리 집에서 어떻게 대화에 참여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고, 나는 싸울 듯 목소리를 키워대는 시댁에서 입을 다물고 귀도 막아야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어느덧 남편은 우리 집에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고, 나는 시댁에서 나 홀로 커피 한 잔 들이켜는 여유를 누리게 되었을 즈음, 내 아들들의 말문이 트였다.

나는 분명 조곤조곤 대화를 시작했었다. 한 명일 때는 그랬다. 두 명일 때는 조금 커졌다. 세 명인 지금은 좀 부끄럽다. 특히, 날씨 좋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좀 매우 부끄럽다. 내가 아들들의 이름을 연달아 불러제끼는 목소리가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내 아들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나를 비롯한 가족 중 누군가를 부를 때도,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도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게 말한다. 마당에서 풀이라도 뽑고 있을라치면 그들의 대화 흐름이 정확하게 파악될 정도다. 그냥 문 자체를 열어 놓으면 안 된다. 모든 게 생중계다. 아들들과 집에 함께 있다가 통화라도 할라치면 정말 힘들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물어본다.

“어디. 밖이야? 뭐라고? 안 들려? 조용한 데로 좀 가봐~”

더욱 문제는 유전의 힘으로 아들들 셋 다 엄청난 수다쟁이다.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밥 먹을 때도 뭐라도 말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하거나 엄마인 나에게 하거나 입에 음식이 있으면 얼른 씹고라도 말한다. 오죽하면 운동신경 꽝인 나의 큰아들이 유일하게 축복받은 운동신경이 얼굴 쪽에 있는 혀, 입, 얼굴 근육 한정이라고 할 정도니까 말 다했지 않은가. 아들들은 가족 중 누군가 눈만 마주치면 침을 삼킬 겨를도 없어 입안 가득 침이 고인 채 마구마구 뭔가를 말한다. 첫째와 둘째가 상상 놀이를 할 때는 잠을 안 잔다. 거기에 끼고 싶어 하는 셋째는 더욱 혀 근육과 목청을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라 몹시 곤란하다. 이를 지켜보는 나로서는 가끔 우리 아들들이 피터 팬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웃을 일이 아니다. 내게는 정말 심각한 고민이다.

문제는 수다 유전자를 물려준 나의 남편이 가세할 때이다. 절대 지지 않는 원조 유전자 소유자께서는 본인이 할 얘기가 있으면 우선 아이들을 권력으로 제압한다. 잠시의 고요가 찾아오면 재빨리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아들 중 하나가 끼어들면 대노 한다. 남편이 진정으로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는 나를 방으로 데리고 가 문을 잠그기도 한다. 음흉한 생각은 금물이다. 오로지 말! 입으로 하는 그 말을 하고자 함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순간을 가끔 떠 올린다. 그날, 지인의 과묵한 둘째 아들을 두고 적당히 속상해할걸. ‘그런 애도 있을 수 있지’ 할 걸. 너무 나의 마음을 알아주신 하늘이 내게는 너무나 강한 수다쟁이들을 보내주셔서 내가 너무 피곤하다. 인간들이 역대급으로 수다스럽다. 참고로 내 아들 중 둘은 현재 사춘기이다. 남들은 입에 거미줄 친다는 그 사춘기. 우리 집은 너무 시끄러워서 거미가 거미줄 치러 오다가 화들짝 놀라 옆집으로 가버린 것으로 치자. 오늘도 나는 ‘내 귀는 왜 두 개뿐인가’를 고뇌하며 아들들의 말을 들어주느라 고생이 많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춘기를 맞이하는 아들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