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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하고 깊은 Apr 08. 2024

자폐 스펙트럼 이야기의 시작

모든 건 육아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사진첩에 남아있는 나의 어린 시절 모습들을 보면 멍하게 입을 벌린 표정들이 대부분이다. 순둥순둥한 인상에 살짝 어리바리해 보이는 얼굴. 잘 웃고 잘 뛰어놀기도 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종일 조잘대는 말 많은 아이. 사람들을 좋아하고 밖에 나가면 인사성이 좋다며 동네 어른들께 칭찬받던 아이. 오빠가 공부하는걸 어깨너머로 보고 한글을 스스로 깨쳐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아이. 그게 나였다.




만일 내가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영상을 만든다면 스토리가 이어지는 드라마나 영화의 형식은 아닐 것이다.

아주 인상 깊게 뇌리에 박혀있는 몇 가지 장면들과 그때 나의 감정들만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친구와 통화하는 동안 주변에서 놀다가 실수로 평상을 넘어뜨려 엄마의 코에 부딪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가 내게 보였던 괴물처럼 무섭던 얼굴 표정, 그리고 나의 당혹스러운 감정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1학년때 내가 말을 안 듣는다며 귀를 잡아 올리며 혼내던 선생님의 무서운 목소리와 공포스럽던 감정도 기억난다. 내 유년시절 기억들은 다 그런 식이다. 뭔가 기승전결의 스토리라인은 전혀 없고 내게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던 몇몇 장면들만 기억난다. 그러니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영화라기 보다는 삽화들만 모아놓은 삽화모음집에 가깝다. 그리고 그 책의 그림과 그림 사이에는 그림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들이 기록되어있다. 그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던 온갖 감각들과 그 감각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했 감정들이 계속 나열되는 식의 기록들이다. 어린 시절 나의 감각기관들과 뇌가 너무 열심히 일을 했던 탓에 나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전해져오는 온갖 감각 정보들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하교 후 집에 가는 길에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고, 혼자 우두커니 서서 그것들을 눈과 손으로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그리고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갑자기 오줌을 참기 힘들어져서 바지에 실수를 하곤 했었다.




세돌이 지난 나의 첫째 아들에게서 그때의 내 모습이 비친다. 유치원 마치고 나랑 집에 가는 길에 '엄마 나 오줌 쌌어요!' 하는 아이. '오줌이 마려우면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럼 엄마가 오줌 컵을 꺼내줬을 텐데' 했더니 아이가 하는 말. '오줌이 안 마려웠는데 갑자기 마려우면 참을 수가 없어요...' 그래 맞아. 나도 그랬었지. 아들과 나의 어린 시절은 참 많이 비슷하다. 하지만 아들과 내가 현저하게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엄마의 정보력의 차이다. 그 시절 나의 엄마는 내가 몸이 허약해서 그렇다며 영양제를 사 먹이셨다. 약국에서 파는 희한한 한약 맛의 사탕이었는데 오줌싸개 아이들이 먹는 사탕이었다. 약은 큰 효과가 없었고 요즘도 나는 가끔씩 소변 실수를 하곤 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엘레베이터나 공중전화박스와 같은 특정한 공간에 들어가거나 특정한 상황이 되면 갑자기 급박하게 소변이 마려워질 때가 있다. 이러한 나는 내 소변을 컨트롤하지는 못하지만 유튜브와 검색사이트를 통해 거의 모든 육아정보들에 손쉽게 접근할 수는 있다. 그리고 내 아이가 보여주는 나와 닮은 모습들 속에서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하였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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