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증후군이 가져온 나의 무안함

조금만 친절하면 안될까요? 우리~^^

by lotus

아들의 출입국 사실 증명서를 떼는 데 필요한 서류를 문의하려고 내가 사는 지역의 행정복지센터에 전화했다. 담당자가 전화를 연결받더니 "아드님 신분증과 도장 가져오시면 돼요."라고 말해 주었고 나는 고맙다고 말한 후 입으로 "신분증은 이미 넣었으니까 도장만 꺼내야지."라고 말한 후 도장을 가지러 서랍함으로 가다가 남편한테서 온 카톡을 확인하고 현금-국제운전면허증 발급에 9천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혹시나 몰라 현금으로 준비해 가려고-을 꺼내서 지갑에 넣고 마침 끝난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 탈탈 털어 널고는... 그냥 아까 챙겨둔 가방만 훌렁 둘러매고 나왔다. 맞다, 도장을 안 가져온 거다...


근데 웃긴 건 내가 도장을 안 가져왔다는 걸 행정복지센터에 와서도 한참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각종 서류를 떼다 보니 행정복지센터에 잘 오지 않게 된다. 한 5분 정도 기다리면서 내 눈에 띈 것은 그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표정과 그 안의 분위기였다. 누구 할 것 없이 다들 마네킹같은 무표정으로 번호표 발급 순서에 따라 일을 착착 처리하고 다음 민원인을 또 맞이하고 있었다. 가끔 비속어를 쓰면서 "아이 씨, 죽겠네~"하면서 뭔가 일이 잘 처리되지 않는지 인상을 찡그리는 어떤 남자와 노인 복지 창구에 앉아 계시는 어떤 어르신, 한 20대 초반의 아가씨, 그리고 기다리는 내가 빚어내는 그곳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은 듯하면서도 아주 냉랭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정말 악성 민원러 때문에 몹시도 몸을 사리고 있는 분위기 딱 그거였다.


금방 내 차례가 와서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아들의 출입국 사실 증명서 떼려고 왔는데요."라고 하자 바로 " 대리인 신분증과 아드님 도장 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차차! 그제야 도장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깜짝 놀라고 부끄러웠다. "아, 제가 실수로 도장을 안 가지고 왔네요..." 했더니 "아까 저랑 통화하시지 않으셨어요? 제가 분명 말씀드린 거 같은데." 라는 차갑디 차가운 답이 돌아왔다. 무안한 마음에 알겠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허둥지둥 일어서서 돌아왔는데 집에 분명 도장은 있겠지만 당일 다시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나의 '라떼'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20대 때 내가 키보드로 서류를 작성하고 있으면-그 당시는 한글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 일부 선배님들 대신 내가 한글 프로그램으로 문서를 작성해 드리곤 했는데-선배님들이 "어머, OO씨, 키보드 치는 손이 안 보여~"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근데 지금은 한글 키보드는 물론 휴대폰으로 톡 보낼 때도 자꾸 오타가 나서 다시 고치는 횟수가 늘어난다. 심지어 사무실 유선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면 "번호 누르는 게 너무 빨라서 우리보다 시간이 반은 덜 걸리네~"하는 주변 분들의 이야기에 괜히 으쓱 했었고 나 스스로도 사람 얼굴 잘 기억하기, 예전의 일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기억을 잘 해서 주변의 감탄을 듣고, 특히 서류에 필요한 것들은 듣자마자 메모도 잘 했지만 머릿 속에 잘 보관도 잘 했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냥 나의 무안함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적어 본다. 아까 그 자리에서 그 분이 "아, 도장을 잊으셨나 보네요. 도장 없이는 서류 발급이 안됩니다."라고 조금만 부드러운 억양과 톤으로 말씀해 주셨다면 그 당시의 무안함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 도장을 준비해 다시 가서 "아까 도장 없어서 안됐어요. ㅎㅎ 아이구, 민망해라. 미안합니다."라고 오늘 안으로 일을 처리했을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이나 학교 현장의 악성 민원이 너무 지나치다 보니 다들 가시를 세우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어디 비단 학교나 공공기관 뿐일까? 우리 모두 누군가 지나가다가 길을 묻거나 말을 걸어도 혹시나 하는 우려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지 못하고 나중에야 방금 전 자신의 태도를 살짝 반성하면서 살아가지 않나 싶다. 너무 어렵다.


그저 조금만 상대방을 덜 무안하게 해 준다면, 조금만 서로를 배려해 준다면, 저렇게 가시를 세우지 말고 자신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남을 대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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