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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얀 Jan 08. 2024

돌잔치는 왜 하는 건가?

돌잔치는 허례허식인가?


 어제부로 두 번째 돌끝맘이 되었다.

사실 나는 첫째 때부터 돌준맘(돌잔치 준비하는 엄마), 돌끝맘(돌잔치 끝난 엄마) 할 정도로 돌잔치를 열심히 준비한 게 아니었기에,

돌준맘이니 돌끝맘이니 하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런 말을 쓰고 있다.




두 번 돌끝맘이 되어 본 입장에서, 이런 단어가 생긴 배경이 이해는 간다.

일단 돌잔치가 너무 상업화돼 있다.

옛날(내 돌잔치할 때처럼 옛날 말이다)처럼 엄마가 직접 나서서 음식을 하거나.. 하는 일은 줄었지만,

이것저것 알아봐야 하는 건 더 많아졌다.

먼저 장소부터. 하객을 몇 명이나 모실 건지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장소를 섭외해야 한다.

그런데..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이 무색하게, 돌잔치 장소 섭외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좀 괜찮은 돌잔치 핫플은 조리원에서 예약해야 한단다..)

나는 소문만 들었지만, **호텔의 팔*이라는 곳은 예약 전쟁이라 '팔*고시'란 말도 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원하는 장소,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 3박자를 다 갖추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나는 저 셋 중 하나 이상을 놓치고 말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ㅠ)



또 장소 섭외가 되면, 돌상도 정해야 하고, 헤어/메이크업, 의상, 스냅 작가 섭외까지..

거의 제2의 결혼식 수준이다.

일단 이렇게 단계가 복잡해지면, 내 머릿속엔 '허례허식'이란 단어부터 떠오른다.


회사 다닐 때, 모든 행사나 의전이 내 눈엔 허례허식으로 보였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이게 정확히 내가 하던 생각이었다.

회사에 처음으로 회의감을 느꼈던 순간들이기도 하고..

근데 우리 아기들 돌잔치는 내가 나서서 '이렇게까지' 하고 있었다.




사실 회사 행사나 의전과 다르게, 돌잔치는 내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물론 내 생일잔치면 절대 안 했다.

그렇지만 아가들 생일이니..

그것도 아가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다 보니, 자신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게 하고픈 마음이 컸다.



근데 사실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만)이 중요하다면, 돌잔치 장소, 돌상, 헤어/메이크업, 의상, 스냅은 왜 필요한가?

- 장소 : 식구들과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한 끼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
- 돌상 : 백일 때처럼 한 상 차려졌으면 좋겠고, 아기 돌잡이도 해야 하니까.
- 헤어/메이크업 :  기왕이면 사진에 예쁘게 나오고 싶어서.
- 의상 : 아기들도 예쁜 옷 입고 사진 찍으면 좋으니까.
- 스냅 : 아가들이 나중에 '첫돌 때 내가 이랬구나'하는 걸 볼 수 있게,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그럴듯한 이유다.

그리고 나는 '식구들과 모여서 맛있는거 먹으며 축하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결국 내가 우선순위에 둔 건 '사진을 잘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침부터 샵에 가서 헤메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빌려 놓은 불편한 의상을 입고, 생전 안 신던 힐도 신고,

졸려서 하품을 쩍쩍하는 둘째를 내렸다가 들어올렸다가 하면서 1시간 넘게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해야 둘째의 미소를 사진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선 그렇게 미소천사인 둘째가 잘 웃지 않아서, 촬영 시간도 생각보다 좀 길어졌고..

그동안 계속 올렸다 내렸다 했더니 결국 오늘 몸살이 났다.

지금도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다 ㅠㅠ


그리고 모형 케이크와 과일들이 차려진 돌상에서

관심 없어 보이는 둘째를 꼬드겨서 뭐든 잡게 만들고(결국 첫째 때랑 똑같이 마이크 잡음..ㅋㅋ),

그렇잖아도 애매한 식사시간이 이것저것 하느라 더 늦어져서

모두 허기지다 못해 배고픔을 잊을 지경까지 오는 바람에.. 음식 맛도 잘 모르고 그냥 먹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듯 먹다가, 정해진 두 시간이 다 지나서 나와야 했다.




남편이 돌잔치 며칠 전부터 계속했던 말이 생각난다.

"누구를 위한 돌잔치야?"


저 말을 들었을 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불만만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잔치가 끝나고 보니 저 말이 본질을 꿰뚫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저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한 적도, 할 생각도 없는 상태로 두 번이나 돌잔치를 치렀다.


사진 좀 잘 찍어 보겠다고 밥도 늦게 먹고, 잠도 못 자고, 불편한 옷도 계속 입고 있었던 아가들.

역시 사진 촬영에 돌잡이 등 각종 행사 때문에 늦어진 식사 시간으로 불편하셨을 양가 식구들.

아기들 들었다 놨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온갖 근육을 다 써서 결국 몸살에 근육통이 온 남편과 나.


정말 누구를 위한 돌잔치였나?





어쨌든, 둘째 돌도 이렇게 지나갔다.

둘째의 시간은 빠르다던데, 연년생 둘째의 시간은.. 한숨 잔 것 같은데 벌써 돌이다(?!?).

상대성 이론의 '시간의 상대성'이 이럴 때 적용되는 건가 싶다.

(사실 상대성 이론의 ㅅ도 모르는 문관데.. 남편이 보면 비웃겠지...)


내 깜냥엔 감당도 안 될 거라..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에 돌잔치를 한 번 더 한다면 

양가 식구들과 좋은 시간 보내는 '본질'에 더 초점을 맞추고

허례허식 같은 요소는 다 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볼 거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절대 절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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