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몰로이, <퍼펙트 마더>
가끔 첫째가 갓난아기였던 시절이 떠오른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하지만, 어떤 기억들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조리원에서 친정으로 간 지 얼마 안 되어, 새벽마다 배앓이하며 몇 시간씩 울던 것도. 그럴 때마다 온 식구가 다 깨어 아기를 안고 달래려 했던 것도. 말도 못 하는 아기가 아파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음만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병원 문 열기까지의 시간이 까마득하게 여겨졌던 것도.
모유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아서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던 것도. 그렇게 3개월 이상을 질질 끌다가 결국 유선염을 얻고 단유했던 기억도.
아기는 그냥 크는 게 아니다. 아니,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누군가는 아기의 손발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기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냅다 울기만 하지. 눈치껏 척척 '손발' 역할을 해 줘야 하는데, 그러기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심지어 분유는 끓인 물을 식혀서 타는 게 좋다는 사실도 몰랐다. 코로나 때문에 조리원에서도 많이 모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조리원 동기'조차도 없던 시절.
이럴 때 내가 원하는 정보,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척척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하다못해 나와 같은 시기를 지나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만나서, 육아도 같이 하고 서로 이야기도 하며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아이들이 세 돌, 두 돌이 된 지금 그 시절의 나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읽었다.
에이미 몰로이 작가의 <퍼펙트 마더>라는 책인데, 제목만 봐도 압박이 느껴지는 책일 수 있다(제목이 무려 ‘완벽한 엄마‘라니..). 하지만 이 책은 육아서적이 아니라 장편 스릴러다. 내가 아주 환장하고 읽는 스릴러! 거기다가 그냥 단순히 킬링타임용 스릴러도 아니다. 양육자들이 본다면, 많은 생각이 들 만한 ‘스릴러‘다.
첫 출산을 앞둔 엄마들이 있다.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고, 쓸만한(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주고받으며 출산 전의 불안함을 달래는 동지들이다. 몇 달 뒤, 예정일이 비슷했던 엄마들은 하나둘씩 아기를 낳는다. 갓난아기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은 어찌 보면 고행의 시간이기에, 엄마들은 여전히 모인다. 대낮에, 예전 그 공원의 잔디밭에서.
그러다 한 엄마가 제안한다. 일탈을 좀 해 보자고. 우리도 쉴 권리가 있다고. 우리가 쉬며 재충전하고 행복해져야 육아를 (맨 정신으로) 지속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해서 브루클린의 '5월맘'들은 어느 날 밤 술집에서 만난다. 물론 아이는 떼어 놓고. 그날만은 아이 생각도, 육아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그날 밤 아기 한 명이 사라졌다. 위니의 아기 마이더스가. 위니는 평소 혼자 아기를 키우는 싱글맘이어서, 잠시도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위니를 잠시라도 육아에서 해방시켜 주려고,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며 졸라 댔었다. 베이비시터를 소개해 주고, 비용까지 대 줘 가면서.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던 위니도 그 정성에 감복한 것인지 결국 모임에 참석한다. 그런데 바로 그날, 위니의 7주 된 아들 마이더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여기까지가 <퍼펙트 마더>의 중심 사건이다. 소설 속에서 이 사건은 아주 크게 공론화된다. 위니는 그냥 유난히 예쁘고 날씬한 엄마가 아니라, 왕년에 미 전역을 뒤흔들었던 드라마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던 하이틴 스타이자, 돌아가신 위니의 엄마는 미 최대 개발회사의 상속녀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간 읽었던 스릴러와 이 소설을 구분 지어 생각하게 만든 점은 여기서부터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아기를 잃은 위니에게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여자들이 전부 다 누려야 한다'라는 생각이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봅니다. 이게 대체 뭡니까? 아기를 낳은 지 몇 주밖에 안 된 여자들이 술집에 가서, 엄마가 되어서는 술에 취해 의자에 올라가서 춤을 추다니(...)" (229쪽)
"제가 만약 아이가 있다면, 그것도 갓난아기가 있다면 그 애를 두고 술집에 갈 수 있었을까요? 말도 안 되죠. 우리 어머니가 첫 아이를 낳으셨을 때는요, 아기가 어머니의 우선순위였어요. 그리고 막내가 유치원에 갈 때까지 그 우선순위는 쭉 변함이 없었답니다(...)" (같은 쪽)
하룻밤, 딱 몇 시간 동안 한숨 돌려 보려던 위니와 엄마들은 졸지에 '여자들이 전부 다 누려야 한다'는 철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갓난아기를 내팽개치고 술집에 놀러 다닌 무책임한 괴물들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되어서 아기는 뒷전이고, 자기들 즐길 것만 생각하는, 모성애는 약에 쓰려고 봐도 없는 사람들. 모두가 이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디어는 한순간에 소중한 아기를 잃은 위니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소식, 더 자극적인 가십을 물어 나르는 데 혈안이 되어 있기만 할 뿐. 분명 이 사건으로 가장 마음이 아픈 사람은 위니일 텐데. 심지어 어떤 언론사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위니가 싱글맘이라는 이유를 들어,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아기를 죽인 '메데이아 컴플렉스'가 있는 엄마일지도 모른다고(이것이 음모론일지 실제일지는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퍼펙트 마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이 소설은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과 현실 속 엄마들의 내면 갈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초보 엄마들이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면서, 모성과 사회적 압박,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을 깊이 탐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두 가지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낸다. 하나는 아기 납치 사건이라는 미스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가 강요하는 완벽한 모성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작가는 독자들의 시선을 교묘하게 조작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마이더스의 납치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우리가 가진 '좋은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누가 아이를 해칠 수 있을까? 당연히 '나쁜 엄마'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설치한 영리한 덫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작가가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의 편견을 이용했는지 깨닫게 된다. 작가는 중간중간 힌트를 남겨두었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했다. 이는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우리가 얼마나 쉽게 '나쁜 엄마'와 '좋은 엄마'를 구분 짓고 판단하는지, 그리고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장치인 것이다.
이 소설의 진정한 힘은 미스터리 플롯과 모성에 대한 성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작가는 독자들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성관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누가 '나쁜 엄마'인지 판단하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완벽한 엄마도, 완전히 나쁜 엄마도 없다는 것을.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다. 완벽하려고 애쓰는 것은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좋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으로 아이 옆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 엄마다.
당연한 말이자, 진리다.
하지만 책의 첫 장면에서부터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공유하고 있다.
“내가 지금 잘(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이 질문은 소설 속 모든 엄마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주인공들은 출산 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엄마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엄마들의 불안은 사회적 시선과 연결되어 있다. 사건 발생 후, 언론이 ‘5월맘’이 아이들을 맡기고 밤에 술을 마시러 나간 사실을 문제 삼으며 ‘책임감 없는 엄마들’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던 것처럼. 아이를 낳고도 자기 자신을 돌보려는 엄마들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의 모습은 우리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여성은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자신은 감추고(혹은 무시하고), 철저히 ‘엄마’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도 '일도, 살림도, 육아도 잘 해내는 완벽한 엄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