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먹을만큼 먹었다.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커뮤니케이션 과잉, 연결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정말 쉬지 않고 울려대지 않는가. 까똑 까똑. 띵. 띵. 더군다나 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서점에 가보면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통의 메일을 쓰고 회의록을 작성하며 보고서를 만드는 직장인들에게는 글쓰기가 참 곤욕스러울 때가 많다.
직장인들은 오늘도 보고서와 씨름하며 고통받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보고서 1장 쓰는데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무슨 대작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쓰고 지우고 읽고 또 읽고 정성을 다했다. 때로는 1장으로 끝내기 위해, 2장을 넘기지 않으려고 온갖 단어를 넣었다가 뺐다가 때로는 한자와 영어를, 또는 약어를 남발해 가며 단어와 사투를 벌였다. 치열하다. 단지 몇 분되지 않는 보고를 위해 나는 그렇게 몇 날 며칠 고뇌하였단말인가. 하지만 성취감은 돌아온다. 자신이 작성한 내용대로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회사가 움직일 때 몹시 뿌듯하다. 그렇다고 매번 성공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건 아니다. 성취감을 맛보기 전에 욕을 먹는다. 과식이다 싶을 정도로.
얼마 전에 대기업 공채 시즌을 맞아 "자소서 작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라는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가만히 보면 보고서 작성과 자소서 쓰기는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미약하나마 고통받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보고서 쓰는 요령에 대한 내 나름의 노하우를 남겨본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보고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보고받는 사람이 간부급(차장, 부장 등)인지 임원급(상무,전무,사장 등)인지에 따라 내용, 형식, 뉘앙스 등이 달라진다. 임원에게 하는 보고라면 대개의 임원들은 의사결정권자이기 때문에 실제 의사결정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하며, 간부에게는 해당 간부가 그의 보스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해당 간부급에서 끝나는 보고가 될 수도 있다. 그 때는 임원에게 보고하는 것처럼 보고받은 간부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내용을 담아 작성해야겠다. 밥상 다 차려주고 떠먹여준다는 심정으로 해야한다. 더럽고 아니꼽다고 생각하면 본인만 힘들어진다. 내가 만드는 안이 결국은 회사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다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조직이란 실무자가 안을 마련하면 간부가 평가하고 임원이 의사결정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사내에서 영어식 이름을 부르건 직급을 없앤 수평적 관계라 해도 누군가는 리더고 누군가는 팔로워다. 수직적 관계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또한 위로 올라갈수록 권한도 많고 그에 따른 책임도 크다. 임원이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는 건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가끔씩 실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회사를 주위에서 목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회사는 정말 오래 다니기 쉽지 않다. 당장 그만두라 하고 싶다.
보고받는 사람이 명확해 졌다면 이제 쟁점 현안에 대해 어떻게 안을 마련할지 아이디어를 짜내야한다.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이는 부분이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보고서를 잘 써도 아이디어가 별로면 끝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회의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조사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손에 피가 날 정도로 마른 수건을 쥐어짜낸다.
아이디어를 마련했다면 스토리라인을 잡자. 스토리라인은 목차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의 시대라 굳이 목차를 스토리라인이라 불러 본 것이다. 그리고 목차라고 부르는 것보다 스토리라인이라고 부르는 게 더 폼난다. 그러니깐 스토리라인이라고 부르자. 농담이다. 사실 스토리라인이라고 부르는건 이유가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흐름이 필요하며 그 구성이 기승전결과 같은 서사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고서는 결론이 가장 먼저 나와야 한다. 보고서 매수가 많아도 결론이 무조건 먼저 나와야 한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전개여야 한다. 하지만 내가 본 상당수의 보고서는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결론은 이렇습니다" 라는 식이다. 이러면 곤란하다. 시간도 다 비용이다. 아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의사결정권자들이 성격이 급하다. 한창 이야기하면 금방 지루해한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꾸지람만 돌아온다. 무조건 결론부터다. "사장님, 이번 현안에 대해서 우리 회사는 이걸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이걸 하려면 홍길동이가 내일까지 이렇게 하면 됩니다. 돈은 이만큼 들꺼구요." 대략 이런 식이다.
이번 포스팅은 일단 여기서 맺음하려 한다. 스토리라인을 잡은 후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할 예정이다.
제 개인 블로그에 있던 글을 브런치로 옮겨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