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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한 호구가 돼

인테리어 업체를 고르며

by 위기회

구축 30평대 아파트 리모델링을 고민할 당시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니. 인테리어라니. 아 눈탱이 맞을 거 같아. 끄아아악. 시세라도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져 아파트 인근에 후기가 좋은 인테리어 업체들을 찾아서 문자를 보냈다.


'도배, 장판, 화장실, 부엌 올수리 하려는데 대략적인 견적 부탁드려요. 전세 세입자 맞추기용으로 가장 저렴하게 견적 주세요.'


부엌 얼마, 화장실 얼마 이렇게 대략적인 금액을 알려주는 곳도 있었고, 세부 견적서를 보내주는 곳도 있었다. 대략적으로 2천만 원 중후반 가격이었다. 나름대로 꼼꼼히 세부 견적서를 들여다봐도 항목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가격 비교가 어려웠다. 새삼스럽게 구옥을 매매하고 싹 수리해서 새집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학생 때 동대문 두타와 밀레오레 같은 쇼핑센터에 옷 사러 갔다가 질렸던 기억이 난다. 가격을 물어보고 좀 비싼 거 같아서 그냥 지나가려고 하면 깎아 주겠다고 붙잡고, 급기야 계산기를 들이밀며 원하는 가격을 누르라고 한다. 그런 흥정이 피곤해서 한번 간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 돈을 더 주더라도 정찰제인 보세 옷가게나 백화점에서 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인테리어야 말로 대표적으로 부르는 게 값인 분야이니 바가지 씔까 봐 두려웠다.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인테리어에 대해 쥐뿔 아는 것도 없으니 호구당하기 딱 좋았다. 견적을 받고도 얼마를 네고 해야 할지 감도 안 왔다. 그렇다고 업체에서 보내준 견적대로 진행할 수도 없고. 애초에 네고를 전제로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이 견적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예전에 부모님이랑 해외여행에 갔다가 호구당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뒤늦게 비싸게 주고 산 걸 깨닫고 억울해하자 '그래야 저 사람들도 먹고살지~'라고 태연히 말하던 엄마. 엄마의 말에 내 마음도 수그러들었다. 그래. 몇 만 원 차인데 그걸로 내 기분을 망칠 순 없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신승리를 했다.


'그럼 그럼. 내가 잘 알고 전문가면 내가 직접 하지~ 어차피 모르는 사람한테 맡기는 건데 그냥 이게 적정 가격이려니 생각하자. 물론 나도 챙기지만 알아서 잘해주겠거니 믿어야 내 정신건강에도 좋지. 뭐 호구 잡혀도 어쩌겠어. 큰돈 들이는 건데 돈 좀 더 써서 결과가 좋은 게 낫지. 그래야 돈 쓴 보람도 있고.'




돈은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을 거고 원래 좋고 고급스러운 것일수록 큰 차이가 아닌 디테일의 차이다. 사과, 귤, 딸기도 시장에서 저렴하게 산 것보다 백화점에서 비싸게 산 것이 더 달고 품질이 좋을 때가 있다. 하물며 혀끝의 미뢰도 그 차이를 감각하는데 인테리어야 말해 뭐 해~ 비싼 게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비싼 게 좋은 경우가 많다.


돈을 더 쓰고 마음 편한 호구가 되기로 했다. 세상을 너무 좋게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다 눈탱이 맞고 후회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이기적이고 각박하게만 보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알아보고 그 너머는 믿고 맡기는 수밖에.


인생 최대 쇼핑의 업적


다행히 이번엔 도배만 해주기로 해서 인테리어의 큰 산을 넘겼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 산에 오르고 싶지 않다. 도배도 합지/실크, 광폭/소폭 등 도배의 세계가 있다. 도배 벽지를 고르면서도 이렇게 종류가 많고 다양하다니. 다 똑같아 보이는 흰 벽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크와 격자 등 무늬가 조금씩 다르다. 하하하하.


인테리어 넘 어려워요. 안 할래요.

이래서 얼죽신! 하나 보다.


얼죽신

: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아)처럼 얼어 죽어도 신축을 뜻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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