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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

아이폰 메모장을 뒤적이다

by 위기회

후둑후둑 비가 떨어지는 여름날 오후. 독립운동가분들의 염원과 노력으로(대한독립만세!)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하였다. 2025년을 살고 있는 나는 그 기쁨을 휴일로서 오롯이 누리고 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만끽하겠다며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 왔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카페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다 뭐라도 써볼 작정으로 브런치를 켰다.



그런데 뭐를 쓰지? 시시때때로 흘러가는 생각을 고요히 브런치라는 그릇에 담아볼까 했는데 막상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다 아이폰 메모장을 열었다.


아이폰 메모장에는 잡다한 것들이 적혀 있는데 여행 준비할 때 적은 여권번호, 사주 봤을 때 들은 내용, 소비와 저축 현황 등.. 그때그때 생각나거나 필요한 것들이 담겨 있다.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라고 시작하는 메모이다.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 <무정형의 삶>을 정말 정말 인상 깊게 읽고 작가님의 생각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yes24에 있는 작가님의 인터뷰도 열심히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인터뷰를 읽다가 마음에 닿은 문장을 짤막하게 메모장에 옮겨 놨다.


꼭 퇴사를 하렴. 20년을 다니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퇴사 이후의 삶을 준비하렴.

아침에 일기 쓰기의 장점은 어제 일어났던 일을 좀 더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거. 나와 마주하는 시간.

불안은 데리고 산다. (아마 퇴사하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던 것으로 기억)

여행은 지금 여기서 행복. 알베르 까뮈의 책 <결혼, 여름>을 추천하셨다. (최근 스페인책방에 갔다가 그 책을 발견하고 구매했다. 아직 펼쳐보지 못했는데 나에게 어떤 감상을 남길지 궁금하다.)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이지? (<감정혁명> 책 추천)


어제도 자만추 멤버들과 만나서 회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회사 이야기에선 자꾸 목소리가 작아진다. 지금 회사 다니는 이유는 안정성과 월급이다. 회사를 다니며 자아성취의 기분을 느낀 적이 정말 드물다. 소소하게 무언가를 마쳐서 후련한 마음은 있어도 스스로 잘 해내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은 느껴본 적이 없다. 회사와 일에 대한 고민은 꽤 크고 오래됐는데 회사를 퇴사를 해야 하나, 내 적성에 잘 맞는 일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 회사 보다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었다. 이 회사가 최선이면 어떡하지...


그랬던 것도 잠시 이제는 꼭 회사에서 성취감과 기쁨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나? 회사 열심히 다니다가 건강이 상하거나, 일한 것에 비하여 보상을 받지 못하면 그건 또 무슨 의미가 있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퇴사하는 용기 보다 지금의 편안함에 안주하게 된다.


직장생활 8년 차이지만 지금부터 퇴사한다면 무얼 할 수 있을지, 무엇으로 돈을 벌지 고민하고 나름의 준비를 해야겠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으려나. 또, 내가 원하는 삶이란 무엇 일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내가 원하는 삶..? 100세 인생에 회사를 퇴사하고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지? 지금 33살이니, 회사 20년 더 다니면 53살이고 그때 명예퇴직하면... 그 이후로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한 생각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것. 할머니가 된 나..? 오마이갓.


문득 광복절에 이렇게 카페에 앉아 나의 안위에 관한 생각을 글로 적다 보니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 조상님들은 "대한독립만세"만을 염원했을 당시 시대정신에 숭고해진다. 지금 나는 그저 '회사독립만세~ 직장인독립만세~'를 바라고 있는데 말이지.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재밌게 보았는데 주인공의 미지의 대사 중에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라는 대사가 있다.


오늘은 아직 모른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현재 나의 오늘을 잘 보내야겠다.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롭고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느껴지는 가을이 오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면 평소 잘 느껴지지 않던 시간의 흐름이 체감된다.


점이 모여 선이 되듯이 오늘들이 모여 내가 원하는 삶에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일부터 스페인어 초급 수업을 수강하는데 이 또한 하나의 점이 되어 내 세계가 크고 넓어 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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