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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Sep 13. 2024

서른 넘은 여자가 동거한다니 주변 반응

동거, 결혼 적령기에 대한 복잡한 심경

서른 넘은 나이에 친구랑 둘이 사는 게 흔한 일은 아니라는 걸 주변 반응을 보며 느끼고 있다. 나는 단순히 '그동안 혼자 살았는데, 이번에는 둘이 산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와 달리 주변 반응은 다양하다. 다양한 반응을 보는 게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론 동거와 결혼 적령기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든다.


“친구랑 동거해요"라고 말하면 보이는 반응 3가지


반응 1, (속마음) 아마 남자친구겠지?

은연중에 내가 말한 친구가 사실은 남자친구고, 결혼 전에 동거하는 거라고 짐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엄청 친하지 않은 친구이거나 나와 사회적 관계를 맺은 (회사)분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아마 삼십대인 내 나이가 당장 결혼해도 아무렇지 않을 나이여서 오해하는 것 같다.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서 그 이후의 대화방식도 다르다. 확신에 차서 "남자친구랑?"이라고 묻거나, 궁금하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서 (얼굴은 누가 봐도 궁금한 사람) 더 물어보지 않는다.


상대와 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느끼며 '우리나라에서 동거 문화가 자연스럽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예정이 아닌 커플이 동거한다고 하면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내 주변의 동거하는 커플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 쉬쉬하는 편이다.


전시에서 본 귀여운 아기 그림, 볼이 넘 사랑스럽다


일반적으로 주거 형태는 생애주기에 따라 혼자서 살다가, 결혼해서 둘이 살거나, 아이를 키우며 사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모두가 동일한 생애주기에 맞춰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재밌고 창의적인 결합 형태의 삶의 모습이 다양해지면 좋겠다. 또, 그런 다양한 형태의 주거 모습이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갑자기 떠올랐는데 그런 점에서 <멜로가 체질>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여자 셋+남동생+아이'가 함께 사는 모습이 새롭고, 같이 지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흥미로웠다.


여기서 하나 더.. ’동거'가 익숙지 않은 것은 브런치를 작성하면서도 느꼈다. 내 브런치 매거진의 주요 주제는 '동거'인데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고 글의 주제에 맞는 키워드를 입력할 때 '동거'가 검색되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를 담는 브런치에서 조차 동거가 키워드로 나오지 않다니 조금 놀랍다.


빛과 형태만 남은 우리들의 모습. 브이~V



반응 2, 남자친구는 뭐래?

내 남자친구의 반응을 물어보는 경우도 꽤 많다. 심지어 "결혼 생각 없어? 내가 남자친구라면 좀 서운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처음에는 친구 말의 함의를 알지 못했다. 이게 남자친구가 서운할 일인가? 그래서 오히려 남자친구한테 되묻기도 했다. 내가 친구랑 산다고 했을 때 서운했냐고. 이런 시선들에 의아해하다가 이게 다 내 나이가 사회가 정한 결혼 적령기여서 그런 것 같다. 부모님의 반응도 딸이 친구랑 같이 산다니까 혼자 사는 것보다 걱정도 덜 되고(부모님 눈엔 전 아직도 응애에요) 안심되어 좋으면서도, 딸이 이렇게 결혼도 안 하고 친구랑 쭉 눌러살까 봐 걱정하신다.


다가오는 가을과 함께 결혼 소식도 자주 듣는다. 작년에 친구들이 한 차례 결혼하더니, 이제는 동생들이 결혼 소식을 전한다. 잘 가(가지 마~) 행복해(떠나지 마~) 괜히 god의 노래 가사가 생각남. 주변에서 결혼을 많이 하니까 나도 괜히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비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결혼 생각이 있지도 않다. 이렇다 보니 당장 몇 년 안에 내 신변의 변화가 딱히 없을 것 같아서 가볍게 결정한 여둘살이다. 물론 남자친구가 있지만 남자친구 있다고 다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내 결심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요즘 내 마음은 동거하는 경험이 나를 더 알아보는 값진 시간이 될 거 같아 기대된다. 내가 누군가와 같이 사는 걸 좋아하는지, 내가 원하는 동거인의 조건은 무엇인지 등.. 친구와의 동거를 통해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들도 실제로 경험하면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음껏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결혼이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삶의 방향을 추구하는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즐겁다. 사진은 베트남 무이네에서 일출


반응 3, 친구랑 안 싸우겠어??

이 반응이 가장 많다. 주변에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한 친구들도 같이 살면 다르다면서 정리정돈, 집안일 등 크고 작은 일들로 엄청 싸운다고 한다. 특히 신혼 초에는 싸우면서 서로 맞춰 가거나, 어떤 부분은 아예 포기하고 흐린 눈을 한다고 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살아도 피할 수 없는 게 싸움인가 보다. 그래서 나도 동거인이랑 같이 살다가 우리가 싸워서 멀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긴 했다.


심지어 나와 동거인은 같이 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 며칠 동안 생활을 해본 적은 더더욱 없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서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수다를 잔뜩 떨다가 헤어지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우리가 같이 살기로 한 결심한 이유는 서로의 다른 면을 애정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서로를 칭찬하며 자존감을 치켜세운다. 대학생, 취준생, 사회초년생,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서로를 지켜봤고, 서로에 대한 신의가 있다. 그런 마음에 서로 못난 모습도 “의그.."하고 넘어갈 수 있을 거 같다.


같이 살다가 크게 싸우게 되면 그것도 브런치의 글감으로 즐겁게 승화시켜야겠다! 지금 이 브런치도 동거인의 무한한 응원을 받으며 연재하고 있다. 여둘살이로 내 일상의 모양이 다채로워질 것 같아 흥미진진하다. 긴 인생에서 친구랑 같이 살아본 경험은 즐거운 에피소드로, 우리들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실 주변의 반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동거를 결심하고 그걸 나와 기꺼이 함께 해주는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



비가 와서 축축 젖은 길도 친구랑 걸으면 이렇게 사진이 남는다


주변의 반응도 나를 애정하는 시선으로 여기며 우리의 재미난 일상을 소개하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도 꼭 결혼이 아니어도, 남자친구가 아니어도, 친구랑 둘이 사는 게 이토록 신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였다.


우리 사회의 주거 형태가 더욱 다양해지고, 그걸 보는 시선이 너그러워지길, 브런치 연재를 마칠 때쯤엔 참신한 결합 형태의 동거가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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