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었지만 시린 바람이 바이칼호 근처의 숲을 지나고 있었다. 부족장인 소오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호숫가를 응시했다. 그의 곁에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 주술사인 사가르가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 또한 호수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둘의 눈빛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뜨겁게 타올랐다. 그들은 반드시 발펠마를 찾아낼 것이었다.
발펠마는 단순한 옛 연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과거 소오르의 연인이었으나 배신하고 떠난 뒤 그를 저주한 신하였다. 그녀의 배신과 저주가 소오르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사가르는 그 상처를 위로하며 그의 곁에서 마법과 용기를 더해주었다.
“우리가 발펠마를 잡으면 이 모든 게 끝날 거야.” 소오르가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사가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는 결의가 빛났다. “소오르, 나는 당신의 의지와 나의 마법으로 당신을 돕겠어요. 그녀를 결코 도망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소오르는 그의 용맹한 전사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오랜 추적 끝에, 마침내 숲 속에서 발펠마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녀는 소오르에게서 도망쳤고, 도망칠 때 그의 가슴에 저주를 남겼다. 이제 그녀는 어딘가에서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사가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기운이 느껴져. 그녀도 당신의 발걸음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소오르, 사가르, 그리고 그의 전사들은 발펠마의 흔적을 따라 바이칼호 근처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강가에 다다랐을 때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예전의 애틋한 모습과는 달리 이제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오르!” 발펠마가 외쳤다. “네가 나를 다시 찾아왔구나. 그러나 내가 그렇게 쉽게 너에게 붙잡힐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그녀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두 손을 하늘로 뻗었다. 바이칼호의 차가운 바람이 그녀 주위를 감싸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여인은 바이칼호의 여신이자 수호신인 달라이 에젠에게 강렬한 기도로 도움을 청했다. 달라이 에젠은 바이칼의 모든 생명과 물을 관장하는 강력한 존재였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호수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마치 생명력 있는 용처럼 구불거리며 소오르와 그의 일행을 향해 몰려왔다. 발펠마의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물줄기는 무섭게 돌진하여 전사들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소오르와 사가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가르는 주술의 힘을 담아 마법진을 만들어 전사들을 보호했고, 소오르는 활을 발펠마에게 겨누었다.
발펠마는 모든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결국 소오르와 사가르의 강력한 결합된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달라이 에젠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한때 연인이었던 남자를 향한 분노와 슬픔이 섞여 있었다.
“소오르, 이게 끝이라 생각하지 마.” 그녀는 나지막이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나를 묶고 가두려 할수록, 너와 네 후손은 영원히 나의 저주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바이칼의 물에 깃든 악마로 다시 태어나, 너와 네 후손들을 끝없이 괴롭힐 것이다.”
마지막 남은 마법의 힘을 다해 그녀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결계를 찢으려 했지만, 사가르의 강력한 주술과 소오르의 굳건한 의지 앞에 막히고 말았다. 사가르는 발펠마를 가리켜 강력한 봉인 주술을 외웠고, 여인은 점점 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발펠마는 결국 바이칼호의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녀의 저주는 바이칼호의 신비한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악마의 화신으로 봉인되었지만, 그 저주는 여전히 물결을 타고 호수와 부족의 영혼에 남아 있었다.
어두운 구름과 비바람은 물러가고 바이칼호 근처에서는 알지 못할 여인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소오르와 사가르는 이제부터 닥칠 그의 운명에 대해서 근심 걱정하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