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봄이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주체를 맡았다. 주체란 동아리를 주체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운영위원으로 2학년이 맡는다. 20년 전에도 문학은 이미 찬밥 신세여서 문학 동아리는 사람이 귀했다. 몇 안 되는 동기들과 주체 활동을 하면서 봄 MT를 계획했다. 발에 땀이 나게 돌아다니며 MT 장소를 섭외하고 (숙소 예약 앱이 없던 시절이다) 참석을 종용하거나 읍소하며 사람을 모으고 일정을 기획했다. 동아리에서 신입생 모집 이후 가장 큰 행사였다. 신입생 때부터 동아리에 푹 빠져 주체가 되자마자 두 팔 걷어붙이고 활동했지만, 개성 강한 동기들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행사에 대한 의미와 열정이 서로 달랐다. 의욕이 앞설수록 관계는 삐그덕거렸다. 드디어 MT를 갔던 시점에는 열정 대신 의기소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타고 난 재처럼 몸도 마음도 푹 가라앉았다.
MT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신입생부터 졸업생까지 많이들 모였고, 직장인 선배들이 양복을 입고 차를 몰고 와서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둥글게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술도 여러 잔 돌았다. 밤새 술 마시고 떠들다가 하나둘 지친 인간들이 적당한 구석을 찾아 잠들었다.
분위기가 왁자지껄 고조되는 가운데 거실을 빠져나와 조용한 방으로 피신했다. 서럽고 억울한 일들을 여러 사람 앞에 털어놔 봐야 좋을 일은 없을 거라는 경고등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몇몇 선배들이 쉬고 있었다.
다음 날 몇 졸업생 선배의 차를 타고 돌아왔다. 뒷좌석에서 침울해 있는 내게 옆에 앉은 언니가 기운 내라는 듯, ‘꽃 좀 봐’하며 팔뚝을 톡톡 쳤다.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에서 상냥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샛노란 개나리가 헉 소리가 날 만큼 왕성하게 피어있었다. 생명력이 무서울 정도로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내가 낸 ‘헉’ 소리를 따라 하며 언니는 왜 놀랐는지 알겠다는 듯이 깔깔깔 웃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개나리가 적군처럼 와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것 같았다. 노란 꽃 무더기들에조차 항복할 것같이 마음이 연약해졌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개나리 노란색 충격 요법으로 인간 관계와 인간들의 조직에서 느꼈던 복잡다단한 슬픔이 해소된 것 같기도 하다. 대자연이 인간 세계의 복닥거리는 모습을 굽어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봄 한 철이 가고 새로운 봄이 왔다. 빨간 벽돌로 지은 인문관으로 올라가는 길, 맞은편 돌담에 노란색 개나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군대 간 아이가 생각났다. 개나리 폭포가 쏟아진다는 소식을 부쳤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또다시 봄이 찾아온다.
올봄의 개나리는 어떤 감상을 줄지 기대된다. 또 놀랄 것인가. 누군가를 떠올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