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구하자

외국인으로 싱가포르에서 살아보기 - 01

by nay

좋은 기회를 잡아 회사 업무로 1년간 싱가포르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다. 지원자들 중 내가 최종 선정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도 잠시,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의 학교와 거처가 가장 큰 문제였다. 오래 전 대학원 시절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1년 거주한 적이 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신감만 넘칠 때인데다가 가족 동반 없이 혼자만 잘 챙기면 되던 시기니까 내 한 몸 나가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벽히 다르다.

사전 출장이란 제도가 있어, 부임하기 전 미리 해당 지역에 다녀와 주거지를 비롯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기간이 있다. 오랜기간 머물면서 잘 준비해서 가족들이랑 짠~하고 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아이가 다닐 학교와 우리가 거주할 집까지 한꺼번에 알아보고 와야한다 (거기에 전임자와의 업무 인수까지).

각설은 그만하고 집을 구한 경험을 얘기해 본다. 앞으로의 글들 (싱가포르에서 살아보기)은 아무 것도 모르고 준비해야 하는 싱 초심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싱가포르에서 한국인들, 특히 장기로 파견 나오는 주재원급의 근무자들은 소위 ‘콘도’라고 부르는 거주형태 (우리로 치면 아파트와 비슷하지만 또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를 찾는 것이 적당하다. 공공 임대주택인 HDB라는 주거지도 있다. 이번에 최종 집 계약 전에 머물기 위해 HDB에서 에어비앤비로 잠시 머물렀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더 열악했다. 물론 HDB 중에서도 최근 지어지거나 리노베이션이 잘 된 곳은 다르다고 한다. 모든 곳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일반화 하기는 어렵다. 다만 꽤 낙후된 시설임에는 분명하다. HDB에서 잘 지내는 분들도 있지만, 처음 싱에 들어오는 경우 보통 콘도를 추천하는 편이다. 특히 어린 아이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전 출장에서 두 군데의 agency (복덕방 ㅎㅎ)을 연결할 수 있었다. 싱에서 어떤 집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던 시기라, 아이 학교로 내정된 국제학교와 가까운 곳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여기에 회사지원 주거비 수준을 기본으로 연식, 주변 상권, 시설 편의성, 교통 편의성 등을 좀 까다롭게 요청했다. 실제로 실물을 구경하는 - 뷰잉이라고 한다 - 일정은 이틀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톡이 뜨는데, 둘쨋 날 뷰잉을 할 에이전시가 너무 매물이 겹친다며 첫 날 뷰잉하는 사람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이유인즉 주인 측에서 비슷한 세입자 프로파일이 와서 같은 사람인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단다. 또한 매물이 겹치면 나중에 가격을 협상할 때 어렵다나.. 정말 100% 다 겹치지는 않았을 듯 싶다만 심증 뿐이라.. 살짝 맨붕이 왔다. 하루 일정이 날아가 버린 셈이다.

그래도 첫 날 보는 매물이 괜찮기를 바라며 만났다. 총 9군데를 돌아보기로 했는데 전날 보내 준 리스트와 살짝 다르다. 게다가 하나의 콘도에서 서로 다른 층만 4개가 리스팅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최근 완공된 콘도가 시설 면에서는 맘에 들었지만 계속 이사 중이고 인테리어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소음이 걱정이었다. 아이 학교와도 살짝 거리가 있어서 그 부분도 감점. 또 다른 콘도가 완전히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군데 적당한 조건의 집이 1순위 후보로 떠올랐다. 괜찮은 조건이었다만 이미 구비된 가구의 상태가 별로라서 협상을 할까말까 고민했다.
-싱에서 집을 구할 땐 non-furnishing부터 partially, fully-furnished까지 원하는 수준에서 가능하다. 물론 fully-furnished인데 내 가구들로 채우고 싶다면 주인에게 요청해서 제공하는 가구를 뺄 수도 있다.

저녁에 호텔에서 생각해 볼 수록 과연 이렇게 집을 구하는게 맞는가 싶다. 적어도 1년을 거주해야 하고 남의 나라에서 사는데 뭔가 찜찜하게 시작하면 안될 듯 했다. 와이프랑 상의하니 자기도 그렇단다. 갑자기 맘이 급해져 propertyguru를 뒤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렇게 진행했어야 한다. Propertyguru를 통해 원하는 지역, 렌탈 가격, 가구의 완비 정도 등을 세입자가 우선 리스팅 한 후에 agency를 만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콘도를 뷰잉하기에 가장 좋다.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소비자 스스로 발품을 파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나 같은 듯 하다.

뷰잉을 같이 한 곳은 한국인 agency였다. 아무래도 처음 오는 곳에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그리고 한국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아마도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새롭게 뷰잉을 하려니 현지인과 연결할 수 밖에 없다. 잠을 설치고 일정이 취소되었던 바로 그 날, 아침 일찍 현지 agency에게 연락을 했다. 놀랍게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자기 친구가 있으니 그에게 연락해서 바로 당일 뷰잉을 잡아주겠다고 한다.
-이런 케이스는 거의 어렵다. 뷰잉은 사전에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일 요청해서 본다는 것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운 좋게 뷰잉을 할 수 있었다. 무척 세련된 곳도 하나 보았는데 가격이 문제였다. 다행인 점은 내가 한국에서 리스트를 보내주면 자기가 대신 가능한 곳을 알아보고 비디오/사진으로 공유를 해주겠다고 한다. 하긴 옛날과는 다른 세상이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친절과 배려에 내심 놀랐다. 현지인들이 더 까다롭고 외국인 상대를 잘 안해주리라 생각한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사전 출장에서 주거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귀국. 한국에 오자마자 폭풍 검색으로 propertyguru를 뒤졌다. 20개 가까운 곳을 리스팅 했으나, 나중에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시기가 나와 맞지 않았다. 왜 좋은 집들은 전부 3월 이후에나 가능한 것일까.. 그 와중에 싱에서 톡이 온다. 대신 가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준 것이다. 그 중에 하나 조건이 나와 잘 맞는 곳이 나왔다. Agency에서도 이 집을 1순위로 추천하였다. 스터디룸이라고 부르는 방이 하나 더 있었고, 풀장을 바라보는 뷰였다. 층도 적당히 높았고 꽤 조용한 지역이다. 이 곳으로 계약 하자고 서로 합의를 했다.
호사다마일까. 갑자기 렌트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알아보니, 집 주인이 집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2명의 입찰자가 있다고 했다. 한 명은 구입해서 세를 주려는 사람이고, 나머지는 자기가 살기 위해 구입을 원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누구와도 거래는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이 집을 렌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싱으로 다시 들어올 때까지 최종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창이 공항에 도착해 인터넷이 연결되어 톡이 뜬다. 집을 안팔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다이나믹한 상황들의 연속.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계약서를 쓰기 전에 적당한 협상과 함께 에어컨 관리비용을 주인 부담으로 넘겼다. 물론 주인 입장에서 손해보면 안되는 장사여야 하기 때문에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랄까. 근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임대 계약서의 최종본을 서로 사인하기 전, LOI라고 부르는 임대 의향서를 보낼 때 한달 치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주인에게 보내야 한다. 현금을 수령하지 않고 온라인뱅킹이나 체크를 사용하는데, 현지 계좌가 아직 없는 나로서는 한국의 은행에서 이체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이체를 한 후 돈을 보냈다고 하니 주인측에서 받은 돈이 없단다.

외환 송금의 경우 한국처럼 바로 이체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간단한 것도 미쳐 몰랐다). 글쎄 이것이 은행마다 차이인지, 보낸 금액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아이 입학금은 당일 바로 확인이 되었는데, 유독 이 금액은 최소 3일 이상 이체가 일어나기 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거다. 오늘 보증금을 보내야 상호 계약에 대한 인정이 일어나는 시점인데, 주인이 돈을 못받았다고 하니 이런 황당+당황스런 것을 어찌하나. 그렇다고 이미 보낸 돈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현지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 이름으로 대신 이체를 부탁하니 흔쾌히 들어준다. 이럴 땐 참 옆에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의 도움으로 아주 정확히 보증금을 보냈고 바로 확인 되었다.

바로 다음 날.. 가구랑 청소까지 바로 세팅해 준다고 한다. 집 키를 넘겨줄테니 (Hand over), 아침에 와서 최종 사인하란다. 와우.
그렇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편안히 회고를 할 수 있지만 정말 고민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또 타지에서 가족들이 편하게 머물러야 하는 곳을 찾는 것이 참 쉽지 않구나 싶다.

너무 내용이 길어서 요약하면..
1. 싱에서 콘도를 구할 때 propertyguru를 이용해서 세입자 스스로 먼저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2. 현지 agency라고 두려워 말자. 굉장히 성심껏 도와주고 어떻게든 일이 되도록 한다
3. 계약금, 보증금에 대한 입금이 즉시 일어나야 하므로 급하게 처리가 필요할 때는 현지 계좌를 이용할 수 있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참, 현금을 직접 수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계좌 이체나 체크 발행이 일반적)

집 구하기는 여기까지.. 싱에서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포스팅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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