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인이 갑이다

싱가포르 집 구하기 - 후기

by nay

집에 대한 만족도는 좋다. 천장이 꽤 높고 옆집이나 윗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거의 인지하지 못할 수준이다. 콘도에 있는 수영장도 큼직하니 여유롭게 놀 수 있어서 좋다.

거실에서 보이는 뷰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한 셈인데 그러다 보니 집 계약과 관련된 남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른바, 세입자의 설움 또는 집 주인의 갑질에 관한 이야기다.


1. 계약할 때 내 여권 사본을 요청했다. 당연히 여권은 보여줄 수 있지. 외국인으로 싱가포르에서 거주 및 근무를 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나는 Employment pass (EP)를 받았다. EP의 앞뒤 사본이 필요하단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에게 렌트하는 것이 맞으니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EP를 받은 사람의 가족은 Dependent pass (DP)를 받게 된다. 집주인이 EP도 모자라 DP까지 요구한다 (아 그 전에 가족의 여권 사본도 이미 보냈다). 계약서에 당연히 sublet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지만, DP를 가진 사람만 살 수 있다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DP까지 굳이 집주인에게 보내야 하나 싶지만 매끄러운 계약을 위해 그러마 했다.


2. 나 역시 회사에 계약에 대한 증빙과 일부 금액의 환급을 위해 품의를 써야 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집주인의 신분증 사본을 같이 첨부하라는 사항이 있었다. 그래서 정중하게 agency를 통해 너네 집주인 사본 좀 보내줘 했더니 그런 건 안된단다. 통상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나. 내 신분증만으로는 모자라 가족들 신분증도 보내라고 난리난리면서 말이다.


3. 임대 후 집에 고장난 것은 없나 점검하다 보니 온수 스위치가 작동을 안한다. Agency를 통해 허락을 얻고, 콘도 관리인에게 언제쯤 교체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집 주인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다행히 지금은 수리 완료).


4. 집에서 사용할 인터넷을 신청했다. 몇 가지 준비할 서류 중에, '너가 세입자면 이 집에 인터넷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집주인에게 받아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아.. 이런 것도 필요한가? 그래도 요청하면 빨리빨리 처리 해주는 건 다행.


계약 기간이 끝나고 집에서 나갈 때, 집 주인의 꼬투리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 (집주인이 보기에) 내가 살기 전에는 없던 흠집, 고장 등을 문제 삼아 보증금을 안돌려 주거나 일부를 차감한 뒤에 돌려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촌 같은 한국인 싱 커뮤니티에는 억울한 상황에 있거나 small court라고 하는 법정 다툼까지도 가는 얘기들이 올라오곤 한다. 그래서 다들 입주할 때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어둔다. 나중에 집 주인이 딴소리 못하게 말이다.


외국인으로 어떤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다만, 이렇게까지 집주인이 대단한 위치일 줄이야. 나만 경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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