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와 대학원은 무엇이 다를까요

by nay

신촌에 있는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고등학생일 때, 생화학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지원한 것입니다(지금은 학부제로 되어 운영되지만 필자가 대학을 지원할 당시엔 각 전공별로 지원했음). 생물연구에 관심은 당연히 있었구요, 21세기는 바이오의 시대라고도 했고 현실적으로 성적에 맞게 갈 수 있는 적당한 학교와 전공에서 선택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습니다. 알고보니 생화학은 화학이 무척 중요한 학문이었습니다. 이름 자체가 생'화학'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전공과 비전공 과목을 다양하게 들으면서 지식을 넓혔습니다. 일반생물학, 일반 화학 등에서 시작하여 세포 생물학, 면역학, 생리학과 같은 깊은 이해가 필요한 전공 과목을 통해 세포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반응과 단백질들 사이의 관계, 단백질의 구조에 따른 활성 변화 등등 학부 시절엔 넓게 다양한 영역을 접하게 됩니다. 대학 학부 과정은 연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소양을 쌓는 시기입니다. 다양한 것을 넓게, 많이 그리고 얕게 배우는 기회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세부 전공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스스로 파악하는 입니다. 학부 4년 과정에서 특히 '전공과목' 교육은 대학원 전공을 선택하기 위한 일종의 시식코너 같은 셈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저는 대전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박사 학위를 받고 포닥까지 하여 자연스럽게 교수가 되어 있을 나를 상상했었습니다. 막상 대학원을 가보니 관심 있던(저는 당시 바이러스 연구에 흥미가 높았지요) 혹은 인기 있는 랩(실험실)은 이미 자대 학부생이 찜해 놓고 있더군요. 억울했지만 외부에서 온 학생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석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위로는 박사 과정 선배들이 5-6명쯤, 석사 선배도 2-3명 정도였습니다. 학부를 외부에서 마쳤다는 이유로 초기 적응이 더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학부 시절과 대학원의 삶은 정말 달랐습니다.

학부 시절에 졸업을 앞두고 실험실 생활을 체험(?)해 보는 과목이 있긴 합니다. 선배들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고 미리 랩 생활을 가늠해 볼 기회인데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솔직히 수박 겉핧기로 배우는 실험실 생활이야 그저 수강하는 하나의 과목일 뿐이라고 넘긴 탓입니다. 실험과 관련된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간단한 실험 몇 개 해보는 것으로 끝난 기억 뿐입니다. 제가 좀 더 똘똘했더라면 그 때 새로운 생활 - 학부생 vs. 대학원생 - 을 위한 차이를 더 파악했을텐데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연구를 하는 랩에 들어가야 졸업 후에 더 유망할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밖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좋은 교수님이 가르치는 랩에 들어가 많은 성과를 내는 것도 좋습니다만, 연구자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박사 학위 후에 있는 <박사 후 과정(Post Doc.)>이 훨씬 의미 있습니다.


학문이란 파고들수록 성취감보다는 좌절을 맛보기 쉽지요.

학부에서 나름 우수한 성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점수가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가 아니더군요. 학부의 교육 과정은 나열된 사실들을 그저 잘 외우고 적절히 배치하고 응용하면 좋은 결과를 성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여 가설을 증명해 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남들에게 설명하고 글로 전달해야 하는 과정(논문 작성)들은 전혀 다른 길이었습니다.


과거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룩한 업적들 틈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내야 하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가설을 세워 증명해 보이는 일. 석사나 박사 과정을 한다는 것은 이런 일을 트레이닝하는 과정입니다. 대학원 과정, 특히 박사 학위까지 간다는 것은 특정한 연구주제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능력을 함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연차/학기가 올라갈수록 (=졸업이 가까워올수록)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검증으로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필수적이지요. 하지만 정작 박사가 되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군'을 깨닫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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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있는 그림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일러스트입니다. 조금 안다고 까불지 말고 겸손하라는 멋진 메세지를 전달하지요 (출처 openculture.com)



때로는 학문에만 집중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는 랩에서 필요한 각종 시약 주문부터 필요에 따라서는 행정적인 서류 처리가 대학원생 몫이 되기도 합니다. 학부 시절에 상상했던 아름답고 멋진 내 대학원 생활은 어디 있을까요? 논문을 읽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번득이며 실험실에서 때로는 고된 밤을 세우지만 멋진 결과를 얻어 기뻐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대학원을 생각하는 학부생이라면 대학원은 무엇을 위해 가는 곳인지 잘 알아보기 바랍니다. 교수가 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고 취업을 위한 스펙일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막연한 동경으로 접근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학부 과정과 달리 가설과 실험, 증명이 반복되는 대학원 과정은 연구자가 되기 위한 진정한 첫걸음의 시작입니다.


대학원과 회사 연구소의 다름을 다룬 글은 기존 브런치북에 있어서 링크로 대체합니다.

궁금한 분은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naymore/75




ps. 언젠가 브런치를 통해 한 분의 고충 상담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원 1학기를 지나고 있는데 이게 적성에 맞는 일인지 고민이 된다는 질문이었지요. 그 분께 드렸던 답장이 생각나서 아래에 덧붙입니다.


대학원생은 조직생활을 하는 일종의 준사회인에 가깝거든요.

대학원의 생활은 학부생 시절과 전혀 다르답니다.

대학원생은 일종의 조직생활을 하는 준사회인에 가깝거든요. Boss라고 할 수 있는 사수나 교수님, 내 동료들, 선배 (후배)와의 관계, 그리고 내가 하는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과 도출.. 회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 보다는 좁은 관계 속에서 학문이라는 우산 아래 보호를 받는 것이지요.


1학기라고 하니 화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고민도 있겠지만 이상적인 대학원의 모습, 그 안에서 내가 기대했던 셀프 이미지, 현실과의 괴리.. 이런 부분들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나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석(박)사 과정에서 내가 하는 일의 범위란 전체의 큰 그림 중에 아주 일부일 뿐이므로 그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답니다. 의미 부여가 되지 않는 일에서 흥미를 잃기도 쉽구요. 다만 여전히 지금 1학기 과정이라면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지 싶습니다. 랩에서 주어진 일도 잘 해야 하지만 내가 이 연구분야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찬찬히 찾아보는 과정이기도 하죠. 그걸 위해 'skill'을 배우는 것이 석사이기도 하고요.


저는 생명과학쪽을 전공했습니다. 멋모르던 학부생 시절, 석박사하면 어느 새 멋진 교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꿈을 꾸기도 했었는데요. 석사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 난 연구에 소질이 없나보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렇게 흥미롭지도 않구나. 우스갯소리처럼 박사를 하고 나면 내가 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론 공부를 위한 공부는 더더욱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한 일이 어딘가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빨리 대학원을 떠야겠다는 마음+난 교수가 못될 것 같아 등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회사를 택했고 아직도 다니는 중입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고민은 있습니다. 나는 정말 이 일이 좋아서하는건지, 아니면 월급의 노예가 되어 이제 그 달콤함을 놓치기 싫은건지.. 여튼 그래도 계속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답니다.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할 의무도 함께 있고요.


연구를 하다보면 연구 자체가 즐거운 사람도 있고, 남들이 연구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면서 보람을 찾는 사람도 있고, 남들의 기술을 평가하면서 일하는 사람도 있지요. 회사에서도 무언가 기술 자체를 개발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이 일을 잘 할 수 있게 서포트해주는 것에 장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어쨋든 기본적으로 연구개발이라는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기는 하지요. 어떤 일을 더 희망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업계(?)의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경험이 있다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누구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어요. 남들의 눈치 보다는 본인이 더 즐거울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세요. 고민이 어디서 출발했고 무엇 때문인지 피상적으로 짐작하였을 뿐이니 제 의견은 참고만 하세요.


아직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가 많습니다!


연락 감사드리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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