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어떻게 현실화되어야 하나 - 2

실패에서 배운다

by nay

최근 읽는 책 <룬샷>을 관통하는 아이디어 중의 하나인 룬샷(혁신적인 기술 또는 제품)과 프랜차이즈(혁신에서 탄생한 제품의 후속작)가 계속 가능하려면, 그에 걸맞은 적절한 조직 나누기와 인력 배치가 필수적입니다. 회사에서 수행했던 Front End Innovation 활동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연구소 내에서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인력들을 차출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저는 멤버가 아니었어요. 참신한 아이디어에는 소질이 없는 편입니다). 활동의 끝에는 Minimum Viable Product - 최소 기능 제품, 주로 린스타트업에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 고객 검증을 하기 위해 만든 시제품 - 도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활동의 결과물이 눈에 띄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그저 한 번 해본 경험이나 실패 사례로만 넘어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야, 그런 거 예전에 해봤는데 별 소용없었어'라고 자책하면서 넘어가지 말고 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었는지 차분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을 할 때는 잘되면 잘된 대로, 안되면 안 된 대로 복기하면서 레슨을 남겨두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실패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직접 겪은 것은 아니라 듣고 옆에서 본 제약이 있는 바, 제 의견에 한계가 있음을 먼저 밝힙니다)


첫째, 현업을 하면서 동시에 혁신도 해야 한다.

혁신 활동을 하는 당사자들에게서 현업의 일을 줄이지 못해 이노베이션 활동에 집중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단기간에 쥐어짜듯 에너지를 쏟으면 뭔가 되는 경우들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룬샷이 말하는 상전이를 이루기 위해 임시로라도 작은 규모의 조직을 독립적으로 분리시켰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에 집중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 방해를 받은 사람이 다시 원래 일에 몰입하기까지 20여분 넘게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더군요. 현업에 막 치이다가 잠깐 독립된 공간에서 멤버들과 혁신을 고민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밀린 업무를 진행하고..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모든 이가 다 혁명가일 필요는 없다.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직접 현실화하는 것이 보람되고 훨씬 동기부여가 되리라는 것에 의심은 없습니다. 톡톡 튀고 재기 발랄한 구성원이 할 일이 있고, 이를 진중하게 구현하는 사람과 조직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밸런스가 맞아야 팀워크가 삽니다. 모든 이가 다 혁신의 아이디어로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일할 때의 강점은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의 손과 능력, 기능을 빌어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노베이션 활동은 아이디어의 제안과 과제 도출 정도로 끝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아주 나이스 한 업무 이관이 따라와야 하지만..)


셋째, 다른 접근방법에 대한 Skill 부족

회사에서 하는 일반적인 업무는 막힘없이 잘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꾸로 시간을 돌려 입사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해오면서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숙지한 까닭에 능숙한 일 처리가 됩니다. 이노베이션 활동이란 것이 그냥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내놓는 아이디어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잘 알 것입니다. 이노베이션은 기존의 방식으로 해오던 것, 익숙한 생각을 벗어나 다른 것을 구상하는 활동을 해야 하는 등 일상의 업무와 결이 다릅니다. 그런 일을 갑자기 주어진 몇 주 동안 완성된 형태로 짜잔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척 대단한 일입니다. 사고방식의 훈련이 몇 번의 강좌로 대신될 수 있다면 좋겠다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넷째, 운영 경험의 부재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조직을 정리할 때 떠오르는 단어로 연상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새로운 문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해서는 조금 다른 결과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운영 경험의 부재란 앞서 언급한 3가지의 이유와 맞닿아 있어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로 도전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잘 운영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똘똘한 사람들을 모아 두는 것으로 자발적 참여만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운영이란 HR이 될 수도 있고 연구비 지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차출된 인력들에 대해 해당 부서의 리더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는 과정이 될 수도 있고요. 활동의 의미를 스스로 찾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해야 하는지, 누가 지지하는지, 실제로 느껴지는 지원의 수준은 어떤지..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겁니다.


번외, 순수한 의도만으로도 버겁다.

위의 예시 외에 혁신기술에 대한 내부 니즈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특수한 미션의 조직은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런 조직일수록 정체성과 탄생의 배경이 가끔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대개 우수 자원이 차출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새로운 조직을 구성한다면 선택받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이해를 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기간의 성과에 매몰되어 푸시가 너무 가해지는 것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혁신은 지루한 과정의 반복과 실패의 경험에서 나오는 선물 같은 것입니다.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뭔가 보여주기 식으로 채근하고 괴롭히면 진짜 될 일도 안되더라, 이게 여태까지 경험에서 깨달은 개똥철학이죠.


(이미지 출처: Vecto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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