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에 대한 여러가지 안내서가 많습니다. 회사 일이란 학교나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당장 서점에 가서 검색만 해보면 마케팅의 기본이라던가, 영업의 기본, 보고서를 쓰는 법 등을 소개한 책들이 잔뜩 나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연구의 기본을 다룬 책은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수요가 없어서인지, 필요가 없어서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 전공자라면 연구하는 방법과 자세는 대학이나 대학원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오랜 연구 생활, 조직 생활을 해보니 갈수록 기본이 중요하구나 하는 단순한 명제에 마음이 쓰입니다.
당연히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과 이를 활용한 스킬은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부터 안되면 일을 할 수 있는 진짜 '기본'이 없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고 싶은 기본이란 좀 더 괜찮은 연구원, 일잘러 연구원이 되는 바람직한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어떤 attitude를 갖느냐라고 할까요? 이런 관점에서 기본기를 어떤 범위까지 포함시킬 것이냐는 각각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저는 크게 세가지를 이야기 하고 싶어요.
이것은 연구 주제, 기술개발 테마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수준의 경력과 경험이 있는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닙니다. 아직 회사에서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 연구원을 위한 조언입니다.
교수님이 던져주는 일이든, 상사가 해보라고 시키는 것이든 일단 받으면 '내 일이구나'하는 태도를 갖는게 중요합니다. 시킨 일이니까 시키는 것만 해야지 하면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이게 비단 연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연구도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저 그런 결과만으로 끝날 수 있고,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그럴 듯한 규모의 일이 되기도 합니다. 결과물을 예측하고 일을 시작하긴 하지만 예상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나를 시키면 세 가지를 더 해오는 사람이 있었고, 하나라도 꼭 해야하냐고 설득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리더 입장에서 합리적인 업무 설명과 위임은 당연히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퍼포먼스 차이는 극명히 달라집니다. 꼭 이 일을 해야 하느냐고 설명만을 요청하던 그는 지금 회사를 떠났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과제를 하는지, 연구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잘 보고 배워보는 자세를 가져봅시다. 대학원 시절, 솔직히 약간 뺀질이 기질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제 대학원 동기 중 하나는 늘 논문을 끼고 살았고 학문의 깊이, 자기 일에 대해 아는 지식이 남달랐습니다. Manners maketh man이란 유명한 말이 저에게는 꼭 이렇게 해석됩니다. '연구자가 (자기 연구 주제를 두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결과를 다르게 만든다'.
성실한 태도로 업무를 해서 실험이 잘 마무리 되고 좋은 결과를 얻었나요? 그렇다면 다음은 데이터 분석과 활용하는 능력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논리적인 데이터 해석은 기본이니 넘어가고, 데이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생명을 불어 넣을 것인가를 이제 고민해 봅시다. 대학원 시절, 논문을 쓰면서 discussion에 내가 한 실험 결과의 해석을 다양하게 바라보면서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런 상상력의 훈련은 회사 업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결과라도 계속 베네핏을 찾아 보는 것이죠 (심한 뻥튀기는 금물).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자신을 확장하고 브랜딩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모 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해 초기 결과를 얻었을 때 일입니다. 사내에는 늘 다른 사람의 결과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마침 젝가 관리하던 공동연구 내용이 다른 팀 과제와 연결될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덕분에 제 업무의 결과는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조금 다르게 풀리긴 했지만, 더 좋은 의미를 갖기도 했을 뿐 아니라 저의 연구 전문성을 넓히는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갓 들어갔을 때 일입니다. 졸업을 눈앞에 둔 가장 연차가 높았던 박사 과정 형이 어느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데이터 절대 고치지 마라'
눈을 꿈벅이고 있으니 '얘가 말을 잘 못알아 들었군'하는 눈치더군요. 왜냐하면 당연히 데이터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형은 알겠다는 듯, 언젠가 그런 유혹에 빠질 일이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막상 실험이란 것을 해보면 소위 데이터 조작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실수로 조건을 잘못 잡았을 수 있지요. 여러 개의 샘플들 중에 어쩌다 하나만 잘못이 생겨 값이 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작은 차이는 반응의 미세한 변화를 유도하고 결과는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일은 아주 비일비재 합니다. 문제는 딱 그 하나의 샘플 때문에 전체 실험의 결과물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튀는 숫자 하나만 빼면 멋진 데이터가 되는데, 마지막 샘플만 제거하면 원하는 그대로 결과가 되는데.. 이상하게 딱 그런 양심을 테스트하는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논문 데이터로 쓰고 싶은데 버려야 하는 결과가 나오면 그 절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겪어보니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었습니다. 정직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유혹을 이기지 못한 연구자의 삶과 미래가 어떻게 망가졌는지에 대한 예시는 너무나 많습니다. 거짓은 스노우볼 이펙트가 될 수 있어요. 늘 조심해야 합니다. 아직 저희 회사에서는 연구원에게 연구 윤리를 가르치거나 학습 기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지에서 비롯되는 실수는 한 번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함수를 얻고, 아무렇지 않게 데이터 플로팅을 수정해서 이상적인 값을 맞춘 뒤, 무슨 잘못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습니다. 성과를 위해 일부러 특정 데이터를 건드리는 나쁜 행위는 절대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조직 모두에게 나쁜 결과만을 가져다 줍니다.
연구직이라 하지만 회사원은 본질적으로 회사, 조직의 생리를 그대로 따릅니다. 보고서, 대인관계, 처세와 같은 것은 다른 많은 아티클과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연구직만의 특성을 다루는 이야기가 부족한 관계로 자꾸 이런 글을 쓰게 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