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커리어 패스를 위한 작은 안내

by nay

연구직으로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무슨 일을 하게 될까요?

저는 취업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회사라는 세상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던 (솔직히는 거의 안 했던) 터라 회사에서 하는 '일'이란 게 무엇인지 진짜 몰랐습니다. 그냥 전공을 살린 일을 뭐라도 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 있었어요. 그저 회사의 일을 단편적으로 바라본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봐도 채용된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첫 면접을 바로 앞두고 같은 과를 나온 선후배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가 있었는데요. 선배 형 중 하나가, '저는 기초연구 부서에 가고 싶습니다' 이거만 꼭 얘기하라고 강조를 몇 번이나 하더군요. 정말 면접관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하길래 선배에게 들은 그대로 답했습니다. 지금도 왜 그 형이 그런 말을 꼭꼭 하라고 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괜히 어정쩡한 부서로 발령이 날지도 모르니 전공을 고려해서 적합한 팀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었나 유추해 봅니다. 가끔 원하지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나는 케이스를 봤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도 해봤고요.


회사 안에는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업무와 직군이 존재 합니다.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연구소는 FMCG 업계입니다.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 보통 식음료, 공산품, 소비재처럼 빨리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제품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영역의 주제에서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는지 알려드릴게요. 아래의 분류나 설명은 실제 조직도와 차이가 있으며 단지 업무 분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구분한 것임을, 그리고 다양한 업무에 대해 아주 대표적인 업무 내용만을 기술한 것임을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연구부서: 소재, 바이오, 분석, 안전성
하는 일: 제품이 탄생하기 전에 (또는 제품 탄생 후 고객에게 전달되기 전에) 필요한 일을 담당합니다. 제품에 쓰이게 될 소재를 처음부터 설계하고 최적의 생산 조건을 찾습니다 (소재). 피부에 효능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새로운 효능 기전을 연구합니다 (바이오). 각 성분이나 최종 제품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지 확인하고요 (안전성). 또한 완성품 안에서 소재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검증합니다 (분석).


개발부서: 제형 개발, 제품 개발
하는 일: 고객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제형기술을 연구하고 더 나은 효능을 주는 제품을 개발합니다. 손에 잡히는 실제 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연구소 내부 소통과 함께 마케팅, 생산 부서와 협의가 무척 많습니다. 공장에 가서 생산과정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일을 한 번도 직접 해본 적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예전에 동기가 개발부서로 오라고 했을 때 한 번 도전해 볼 것을 하는 미련이 좀 있어요. 다만 간접적으로 개발부서에 속해 일한 적이 있을 때 연구원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원부서: 전략, 운영, HR
하는 일: 채용, 연구비 배정, 과제 운영, 연구소 운영 등 실제로 연구소가 잘 돌아갈 수 있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합니다. 각종 투자를 해야 할 때 합의가 필요한 부서들이기도 합니다. 만약 연구 개발 자체보다 연구원을 돕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면 이런 부서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학부부터 시작하여 대학원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쌓아 온 연구 전문성에 대한 강점이 사라지고 행정직으로 전환되는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합시다. 장점은 연구소를 비롯하여 회사 전반에 걸친 이슈를 알게 되고, 연구소 운영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년 간 전략과 부서 운영에 일을 한 적이 있는데,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무척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작게라도 경력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추천합니다.



학위를 받고 회사에 들어가면 내 전공을 어떻게 살리지?라는 질문에 매달리기 쉽습니다. 이력서를 보면 자기소개란에 저는 이런 연구를 전공했기 때문에 회사에 이런 방법으로 기여하겠습니다, 하고 작성하지요. 학교에서는 본인 연구만 해도 되고, 연구의 결과물(=논문)이 바로 성과로 확정되는 전공 분야나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무척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회사에서 전공 분야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엄청나게 특화된 기술 분야, 반드시 어떤 과업을 해내기 위해 채용하는 특별한 사례가 분명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조금 넓은 관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는지가 우선 중요합니다. 전공분야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연구라는 일을 하는 기본기를 갖췄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연구부서로 지원, 입사를 했던 사람이 개발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이오 기술을 전공했지만 개발부서로 입사하는 사례도 있고요. 전문 기술분야에 대한 스페셜리스트 역량은 기본이지만, 다양한 업무를 골고루 케어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다른 분야로 커리어 패스 Career path를 이동하는데 유리하더군요.


커리어 패스에 대해서는 회사에 들어온 다음 주변을 잘 관찰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직, 간접적으로 위에 언급한 모든 부서 또는 업무를 경험해 보니, 회사 일을 잘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부서의 관점으로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제가 일 하는 분야는 개인의 경험 다양성에 기반한 성장의 기회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외길을 파고 기술 전문성으로만 승부를 볼 수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는 그런 제도가 있어서 기술 장인이 되어 커리어를 가져가는 선배님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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