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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렌시아를 꿈꾸며

홈 스타일링을 의뢰하였다.

by nay


해외로 나오기 전 살고 있던 전세를 정리했다. 이때 가지고 있던 많은 가구와 가전을 처분했다. 원래 계획보다 해외 생활이 길어짐을 알게 되었다. 신혼살림으로 장만했던 것들의 수명이 다하기도 하였고, 그것을 마땅히 보관할 장소 또한 없었다 (다행히 쓸모 있는 것들은 여러 방법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갔다). 내년에 귀국하게 되면 보통의 사람들처럼 아파트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한 곳을 떠날 준비는 곧 다른 곳에 정착할 준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최근 트렌드를 몰랐던 것인지, 그동안 몇 번 이사할 때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서였는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인테리어만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홈 스타일링'이란 것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인테리어의 관심이 주로 '외형의 변화'에 방점을 찍었다면, 홈 스타일링은 외형을 포함하여 장소에 어울리는 가구나 소품을 제안, 배치하고 오브제들 사이의 색상을 고려하는 등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랄까? 필요하면 맞춤 가구는 기본이고 침구까지 제작한다. 즉 공간의 콘셉트를 잡고 콘셉트에 맞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내 맘대로 정의). 우리가 모델하우스 가서 구경하는 것처럼 잘 꾸며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란 표현이 있듯, 아무리 좋은 물건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리 보인다. 인테리어를 훌륭하게 했어도 어울리는 가구와 소품을 찾는 것은 또 다른 감각과 경험의 영역이다. 어쩌다 보니 새 아파트에서 두 번이나 살게 되었는데, 구경하는 집이라고 된 곳을 가보면 늘 어느 한 구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오버스러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기존과 확 티 나게 달라진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과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멋들어지게 스타일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이지 싶다.


스타일링 서비스를 할까 말까를 가지고 아내와 잠깐 논의를 했었다. 스타일링이 잘 된 집의 예제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뜻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비슷하게 꾸미면 될 것 같다. 소품 몇 개 사고, 액자 좀 벽에 걸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일반인의 관점에서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선택과 그들 사이의 조화를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해도 될까 싶은 과감한 배색과 도전적인 콘셉트도 가끔 있다. 그런 도전적인 결과물이 아름답게 완성된 것을 보면 내가 의뢰한 것도 아니지만 짜릿함을 느낀다. 물론 생필품이 자리를 잡고, 실제 살림살이로 어지럽혀지기 이전에 예쁘게 찍은 사진들이라 현실은 곧 엉망이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공간에 대한 생각과 현장을 다루는 것은 정말 전문인의 영역이구나 싶다. 잘 나가는 업체들은 지금이 9월인데 이미 내년 초 일정이 대부분 마감되기도 한다. 관심 있게 본 한 곳은 심지어 내년 연말까지 작업 일정이 완료되었다니 보는 눈은 비슷한가 보다.


후기를 보면 혼자서는 이렇게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꽤 많다. 홈 스타일링은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집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작품 활동처럼 느껴진다. 같은 공간을 다르게 꾸미는 능력과 센스가 부럽다. 그런 센스가 부족하기도 하고, 시간과 발품을 팔아 하나하나 마련할 자신도 없는 우리는 결국 홈 스타일링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했다.



돈으로 서비스와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어지러운 집을 정리해 주는 것도 돈이 된다. 집을 정리하는 기술을 책으로 낸다. 예전 같으면 굳이 그런 것에 무슨 돈을 써? 했을 법한 일에도 지갑이 열린다. 노하우를 상품으로 팔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체험이 중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물건은 온라인으로 사는 것이 일상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는 체험은 불가능하다. 오프라인에서 펼쳐지는 경험에서 오는 만족감은 가상의 현실과 차원이 다르다. 현실은 시궁창 같지만 VR 안경과 체험 슈트를 사용하면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세상은 아직이다.

또한 미래는 개인화된 제품, 서비스가 더 각광받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홈 스타일링이야 말로 진정 초개인화된 체험 콘텐츠를 만들어 파는 상품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더 세분화되고 섬세 해지고, 남과 다른 나를 위한 공간과 시간을 요구하면서 홈 스타일링이라는 비즈니스가 점차 커진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나 또는 우리 가족을 위한 차별화된 공간의 탄생. 이제 우리는 기꺼이 그것에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퀘렌시아 Querencia (삶의 안식처, 기운을 찾는 장소를 뜻하는 스페인어)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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