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에 대한 단상
오랜만에 머리를 잘랐다. 회사를 갈 일이 줄다 보니 외양 관리에 신경을 덜 쓴다. 그러고보니 두어 달 전에 이발을 했었다. 머리카락은 매일 0.3~0.4mm씩 길어져서, 한 달이면 대략 1cm 조금 넘게 자란다. 모발이 풍성한 수준은 아니지만 탈모는 아직이라, 두 달 정도 기르면 길이도 길이지만 머리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분명 있다. 자르고 나면 한층 가벼워진 기분을 만끽한다. 특히 땀으로 축 늘어지는 머리카락을 쳐내고 나니 마음도 가볍다. 양들이 털을 깎고 나면 얼마나 개운할지 절로 상상이 간다.
헤어 스타일이 주는 임팩트는 크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어서'로 시작하는 <입영열차 안에서>는 일반인에서 군인으로 바뀌는 신분의 착잡함이 잘 드러난다. 이별 이후 미용실을 찾은 박정현의 <미장원에서>처럼 머리를 바꾼다는 것은 심경의 변화, 마음가짐을 달리함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 보자. 중학생 때는 스포츠 머리라고 부르는 것을 해야만 했다. 한문 선생님은 남자 아이들의 머리카락은 이성을 향한 안테나라고 불렀다. 머리가 길면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공부에 소홀해지니, 바짝 자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었다. 짧은 머리가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지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한창 사춘기 나이를 지나는 남자 애들이었기에 짧은 머리가 위생에도, 머리 냄새 방지에도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머리카락에 대한 주권(?)을 잃고 학교 방침에 따라야 했던 소년들은 기회만 생기면 조금이라도 머리를 기르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그래봤자 또래 여학생들이 관심이나 가졌겠냐마는.
미국에서 잠시 수학하던 시절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러서 꽁지 머리를 한 적이 있다. 지도교수님도, 부모님도 없으니 지지고 볶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었다. 포니테일까지 하고 싶었으나 생각만큼 빨리 자라 주지 않는 머리카락 때문에 겨우 모아모아 꽁지만 고무줄로 묶을 수 있었다. 지금 보면 그리 멋있을 것도 없는데 왜 집착했었는지 모를 일이다(헤어 스타일의 완성은 얼굴인데). 그렇게 애지중지 기르던 머리를 한순간의 실수로 바짝 깎이게 되었다. 미용실에 멋도 모르고 들어가 과감히 cut!을 외친 탓이다. 내가 생각한 short과 미용사의 short의 정의가 달랐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대학원 막바지, 펌을 해서 '바람머리'라고 부르는 헤어스타일을 한 적이 있다. 문제는 그 머리를 하고 입사 면접을 보러 간 것이다. 단정하게 입고 가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머리 모양에는 별 생각이 없었나 보다. 입사 당일에 어머니가 '이그, 저 머리..'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미리 말씀을 주시지..). 그 말을 듣고 잔뜩 신경을 쓴 채 면접장에 가니 정말 단정한 사람들 뿐이다. 다들 같은 미용실에 다녀온 모양이다. 아뿔싸, 나만 튀는 느낌. 대뜸 면접에서 탈락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걱정은 늘 현실이 된다던가. 면접장에서 임원 한 분이 OOO씨는 머리가 많이 특이하네요~라고 하셨다. 임기응변으로 '네, 꼭 다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씀을 하셨던 임원은 바로 직속 연구소 소장님이었고, 대답과 달리 나는 입사 후에 머리를 전혀 다듬지도, 자르지도 않았다.
해외에서 지내면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쉽지 않다. 미용사에게 내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고, 헤어 스타일에 대한 표현을 익혀야 하는 까닭이다. 맨 처음 머리를 하러 갈 때 일이다. 가격이 로컬에 비해 비싸기는 하지만 마침 한국 미용실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낭패를 당했다. 한국 미용실 체인점일 뿐, 한국인 미용사는 없고 죄다 로컬 미용사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한 번 맡겨 봤는데 걱정 보다는 잘 해줘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다음에 찾아가면 그 미용사가 아예 없어지고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점. 여튼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기 어려울 땐 그저 'Trim'(다듬어 주세요)을 말하면 그나마 덜 망친다.
머리를 하러 가면 자못 얌전해 진다. 밸런스를 잘 맞춰서 자르려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을 떠나 어딘가 숙연해 지는 무엇이 있다. 삭발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 모양이 맘에 안들어도 조금 지나면 자라나는 머리카락 덕분에 별로 티도 나지 않을 터인데, 머리카락을 잡고 조심스레 가위질을 하는 미용사 앞에서는 경건하게 앉아 처분을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천을 둘러 목 아래로는 보이지 않음에도 내 손은 세상 얌전히 무릎에 놓고 허리를 세운다. 미용사의 손이 조금이라도 실수하지 않게 말이다.
가끔 어이 없는 실력을 가진 초심자들에게 머리를 맡기게 되면 영 이상한 헤어 스타일을 갖게 된다. 또는 나와 미용사 둘 사이의 소통 오해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결과가 나온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자르기 전의 상황을 만들 수 없는 불가역 반응이므로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온전히 이발사/미용사에게 머리카락을 맡겨야 하므로, 처음 찾는 미용실에서는 결과물에 대한 스릴이 있다.
최근 한국에는 바버샾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미용실만 다녀 봤지, 바버샾은 가본 적이 없다.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빌면 나를 소중히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는 평이 대다수다. 하긴 미용실을 가면 남자 컷은 후딱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중년 남자가 자기애를 펼칠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있겠는가. 바버샾에서는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며 머리를 깎고, 면도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한다니 자못 궁금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바버샾 이용을 할까 보다.
염색도 해보고, 블리칭도 해보고, 길러도 보고 펌도 해 봤다. 머리에 칠 장난이 없다. 더 이상의 미련은 없어진건지, 나이가 들어 그런건지 언제부턴가 그저 단정하게 보이면 좋다. 아니, 솔직히 이제부터는 머리카락이 덜 빠지면 좋겠다. 숱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 헤어 스타일보다 중요하다. 오랜만에 머리를 잘랐더니 정신이 차분해 지기 보다는 머리카락에 담긴 괜한 사연들이 떠올랐다. 가벼워진 머리가 눌려 있던 생각들을 되려 끄집어 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