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Nov 13. 2020

Don't be naive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의 부탁으로 학생들과 줌 미팅을 진행했다. 그 학생들은 화장품에 쓸 소재를 개발 중인데, 회사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는 얘기였다. 막상 만나보니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학생들이고,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다. 모니터를 통해 보는 얼굴이긴 하지만 한눈에 봐도 앳된 모습이다. 회사에서 연구개발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소재 소싱에 대한 관심 등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 여러 대학과 직접 공동연구를 운영하고, 다른 팀의 공동연구 또는 회사 차원의 파트너십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외부 기술을 소개하고 싶다는 곳과 이런저런 미팅의 기회가 꽤 있었다. 싱가포르 근무에서는 그런 기회가 더 늘기도 했고, 오랜 기간 외부 기술/대학과의 미팅을 해보니 느끼는 점이 있다. 이제부터 하는 얘기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는 것이라 편견이 있을 수 있지만, 외부 연구자와 미팅을 하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겨 본다.


어떤 분야든 오랜 경험을 가지고 식견을 쌓으면 잘 알게 되고 '전문가'라는 경지에 오른다. 전문가의 영역을 떠올릴 때 좋은 예는 대학 교수다. 본인의 연구에 대한 자긍심 높고, 전문 지식과 넓은 견지도 있다. 연구실에서 연구 개발하는 소재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연구 자체에만 몰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업화 가능성을 생각하는 교수들이 많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좋은 소재/기술이 있는데, 이걸 한 번 회사에서 써 보면 어떻겠소? 하고 질문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어디 하나 빠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얘기를 듣다 보면 세상에 이런 좋은 기술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데 관점을 조금 바꾸거나 약간만 옆에서 보자. 회사가 바라보는 기술의 의미와 가치, 활용도는 학교라는 연구 중심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완전히 다르다. 논문을 쓰기 위한 소재나 기술이 아닌 이상 회사의 관심은 '그래서 이걸 제품에 어떻게 쓸까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을 두고 판단한다.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주 최강 기술일지라도 제품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간단한 예로 어떤 좋은 활성 성분이 있는데 생산 수율이 엄청나게 낮다던가, 유사한 다른 소재와 비교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던가, 효능만큼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던가, 실험용으로는 적당하지만 제품에 쓰려니 용매에 녹지 않는다던가, 회사에서 원하는 만큼의 양을 제 때 생산, 납기할 수 없는 수준이라던가 하는 다양한 이유로 회사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다. 회사에 소개되는 외부의 유사한 기술들 사이에서 비교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후보들도 꽤 있다. 내부적으로 비슷한 과제를 이미 진행 중이어서 반려하는 사례도 있고.

어떤 단계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거절을 하는 과정에서 좋게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정확한 사정을 얘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또는 대외비가 되는 사유가 있어서 둘러말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피드백이지 싶다. 그래야 상업적으로 기술을 성공시키고 싶은 쪽에서도 무엇이 부족했는지, 회사가 원하는 개발의 방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다음엔 더 나은 버전을 준비할 수 있는 법이다.


이유야 어떻든 거절을 많이 당한 분들은 직접 스타트업이나 회사를 차리고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생각보다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다. 내가 일하는 분야(FMCG)는 진입장벽이 낮지만 성공적인 궤도에 오르기 만만하지 않은 영역이다. 밖에서 보면 쉬워 보여도 이쪽 업계에서 실적 퍼포먼스를 내는 것은 어렵다.


외부인이 쉽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앞서 말한 '내 기술이 우주 최강', 즉 내 것 쩔어! 하는 마음으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 믿는 까닭이다. 기술이 좋은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앞서 예시로 든 사례들처럼 아직 사업화 하기에 준비가 미흡한 경우가 대다수다. 초기 결과만 보고 덤벼들면 곤란하다. 물론 좋은 논문으로 학계에서 인정받은 후보 소재와 기술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기술이 하나의 상품이 되어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생산/제조/판매되어 매출과 영업 이익을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그걸 잘 안 보고 기술 자체에만 집착하면 더더욱 성공에 가까이 가기 어렵다. 연구자로서, 기술자로서 자긍심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별개로 사업, 시장, 트렌드 등을 공부하면 좋겠다. 순진한 연구자 마인드는 잠시 접어두자. 


다시 돌아와, 난양공대 친구들의 기술은 우리 회사에서 현재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미팅은 싱겁게 끝났다. 대신 스타트업을 준비 중이라 해서 이런저런 경험을 했던 내 생각을 조금 들려주었다. 몇 년 뒤 멋지게 성공한 모습의 그들을 상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절의 달인이 되어 가는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