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사진을 조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레이소다라는 사이트를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 시작했다면 아마 photokr.net이라는 사이트도 알지 모른다. 한 때 열심히 사진을 찍으러 다닌 적이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좋았고, 그것을 포스팅하면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들이 있어서 좋았다. 사진을 주로 올리는 개인 홈페이지를 오랫동안 운영했다. 그러다가 레이소다를 알게 되어 거의 초창기에 가입한 작가가 되었었다.
레이소다의 인기는 놀라웠다. 인터넷에서 사진 좀 한다면 거기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은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카메라 회사마다 동호회 같은 주요 사이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미놀타 브랜드를 썼는데, 미놀타 클럽이라는 곳이 있어서 정보도 얻고 사진도 올리고 중고로 바디와 렌즈도 사고팔고.. 그랬다. 그런 사람들을 '사진'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모은 곳이 바로 레이소다였다. 물론 우리끼리의 얘기였을지도 모른다. 유명한 진짜 사진작가들이 들락거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사이트를 통해 유명해진 몇몇이 있음은 분명하다. 나도 언젠가 그런 유명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열심히 사진을 찍고 포스팅을 했다. 문득 지금의 브런치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작가가 사진을 올리고(글을 쓰고), 독자는 좋아요(라이킷)나 평(댓글)을 남기는 시스템. 좋은 (사진)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집합 장소. 거기서도 일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고자 무던히도 애쓰고 욕심 좀 낸 기억이 있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흥미는 사라졌다. 한창 사진을 할 때는 새벽에 두물머리 찾는 것은 당연한 노력이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 무엇보다 길을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사물, 사람, 상황, 빛의 아름다움..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 버렸다. 좋은 빛과 그림자만 보아도 흥분되던 감정을 잃은 내가 너무 아쉽고 안쓰럽다. 왜 그런지는 모를 일이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회사에 들어오면서 사진을 손에서 많이 놓게 되었다는 시기는 맞다.
그러나 여전히 컴퓨터에는 예전에 가졌던 취미의 흔적이 역력하다. 디지털카메라도 썼지만 필름 카메라의 느낌과 결과물이 더 좋게 느껴져서 주로 스캔한 결과물이 디지털화되어 남아 있다. 시간이 좀 남는 어느 날, 사진 폴더를 정리하다가 문득 레이소다가 생각났다. 주소를 쳐보니 아직 있다. 혹시 로그인도 되나 보니 된다. 들어가서 가만히 내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창고 깊숙하게 넣고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일기를 꺼내보는 발견의 기쁨. 과거의 나를 만났다. 정책의 변경 때문인지 누군가 달아 주었던 댓글과 평은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소중한 사진들은 그대로 남아서 모두 다운로드하여 두었다.
당시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명료해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찍었던 사진인지 거의 다 기억이 난다. 필름 사진을 직접 스캔하던 시절의 사진일수록 더 그렇다. 디지털로 넘어온 이후에는 그런 기억들이 좀 희석된 느낌이다. 열정도 반감기가 있는 것인지. 그래서 반감기에 따라 기억의 회로도 함께 노화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름 젊은 시절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잊었던 열정이 조금 돌아오는 느낌이기도 하다.
오늘은 카메라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가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