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상자에 담아보는 나눔

by nay

아이 학교에서 Shoebox of Joy라는 것을 진행한다는 교장 선생님의 메일이 있었다. 말 그대로 Shoebox(신발 상자)가 필요하다. 신발 대신 들어갈 것은 여러 가지 생필품이다. 코로나로 인해 자기 나라, 가족들에게 가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보다 즐거운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게 돕자는 취지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연말 휴일을 고국에서 보냈을 그들이 얼마나 아쉽고 힘든 마음일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싱가포르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주로 인도계 사람으로 보이는)이 공사장 옆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1톤 정도 트럭의 짐칸에 여럿이 앉아서 이동하는 장면이다. 처음엔 낯설던 트럭 위 모습이 익숙해졌다. 공사하는 곳이 많기도 하고 싼 임금으로 힘든 공사일을 하려니 많은 수의 외국 노동자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올해 중반쯤 싱가포르에서 코로나가 엄청 크게 터져 하루 몇백 명씩 나온 적이 있다. 그 대다수가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이 머무르는 기숙사에서 나온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인구를 대략 500만 명 정도인데, 30만 명은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고 하니 참 적지 않은 숫자다. 이제는 기숙사를 들끓게 하던 확진 케이스도 거의 없다.


집에 있던 신발 상자를 찾아 학교로 먼저 보내고, 거기 들어갈 물품을 따로 구비했다. 학교에선 선물로 보낼 물품 리스트도 친절하게 적어 주었다. 손세정제를 시작으로 믹스커피나 라면 같은 간편식부터 밀가루, 소금, 오일, 샴푸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다양했다. 딱 신발 상자에 들어갈 정도만 보내라 하니 마음의 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다. 아이 말을 들으니 학교에서 신발 상자를 예쁘게 꾸미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왜 상자부터 우선 보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이에게 이런 일을 왜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얼마나 잘 알아들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취지는 학교에서 선생님도 다시 잘 설명해 주실 테니 이해하리라 믿는다. 이런 경험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것임을 나중에 커서라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에 불우이웃 돕기라는 걸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무슨 이름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을 살아보니 내가 잘나서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운이 좋게 잘 풀려서 이런 생활을 영위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연말이고, 곧 떠날 준비를 하면서 필요한 것을 누군가에게 나눔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돌아본다. 아이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신발 상자 안에 담긴 나눔의 따뜻함이 받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길 바란다.


영상은 Shoebox of Joy 준비 과정과 배송까지 담은 것 (학교 공식 채널)

https://fb.watch/2pt_0xV9FP/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레이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