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으로 이삿짐을 보냈다. 배를 타고 긴 거리를 여행하여 몇 주 후 새로운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집에는 원래부터 우리 것이 아니었던 식탁과 소파, 티비 등이 남아있다. 아들 말대로 '집이 훵하다'. 문득 3년 전 처음으로 집을 빌리고 가족들 없이 혼자 지내던 잠깐의 시기가 떠올랐다. 그때도 훵한 집이었다.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은 아직 오기 전이었다. 가족도 한국에 있었다. 그저 집주인의 소파와 식탁, 티비가 덩그러니 있었다. 그나마 티비라도 틀어 놓지 않으면 집안 가득 적막한 기운만이 돌았다. 그때와 다른 것은 지금은 함께 밥 먹고 떠들 수 있는 가족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올 때와 돌아갈 때의 비슷한 상황이 기시감 같은 기운을 풍김에 기분이 묘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사람 얼굴과 이름을 단번에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여러 번 인사를 하고서야 누가 누군지 알았다. 그렇게 익숙한 인연이 되었다 싶으니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다시 나누는 인사는 작별의 목적이다. 각자의 안녕과 행복을 빌며 만남을 정리하는 인사다. 같이 밥을 먹고, 집을 찾아와 인사를 한다. 만남도 헤어짐도 처음과 끝은 어색하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인사의 끝은 여전히 낯설다. 처음 나누는 낯섦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님의 침묵 중에서
익숙하던 풍경도 마음가짐이 달라진 이후 다르게 다가온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몸에 밴 것들이 있다.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것 중 하나는 차선이 반대방향이라는 점이다. 길을 건널 때면 아직도 일단 왼쪽을 나도 모르게 쳐다본다. 오랜 시간 흔적이 된 습관은 쉬이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떻게 지하철을 타는지, 버스는 어디서 내리는지 이제 다 알게 되었는데 그것마저 요 며칠은 새롭기만 하다. 별것도 아닌 일들에 괜한 감정을 담는다.
새로운 곳에서 낯선 시작을 준비하였던 것처럼, 떠남은 친한 사람, 익숙한 풍경과 낯설게(어색하게) 작별하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테지만 지금은 그 끼인 시간이 어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