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를 나갔다. 어딜갈까 고민하다가 집 근처에 있는 오상진, 김소영 부부가 운영하는 책발전소를 찾았다. 나름 핫하다는 곳으로 알고는 있었다. 몇번 지나쳐 갔지만 들어갈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마침 다른 카페가 만석인지라 혹시 여긴 어떤가 싶어 들어가 보았다.
제일 먼저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리마다 있는 콘센트.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탓에 최근에는 스타벅스를 비롯해서 노트북을 펴놓고 오랜 시간 자리를 점유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흔하다. 콘센트를 없애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떠날 수 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긴 너 오래 있고 싶으면 그래도 돼, 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이 신선했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음료 하나 시켜 놓고 컴퓨터 하는 사람, 아이패드로 뭔가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왜 콘센트를 두었을까 생각해 보니 원래 여긴 책 보는 카페라는 컨셉이니까 한 자리에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괜찮다는 뜻이겠다. 주인장의 배려심이 느껴지는 장치다.
콘센트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주변을 다시 둘러 보았다. 옆옆 자리에 한 아이가 똑바른 자세로 허리를 쫙 펴고 팔은 쭉 뻗은 채 '엉덩이 탐정'을 탐독하고 있었다. 어찌나 바른 자세로 보는지 기특하고 놀라웠다. 그 다음으로는 생각보다 넓은 안쪽 서가가 눈에 들어왔다. 탁자 위쪽으로도 큰 책장이 있는데 몇 권의 책들이 있어서 마음에 드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여기 꽂힌 헌책(?)은 맘대로 볼 수 있지만 많은 책들이 판매 중이라 그것을 편한 마음으로 읽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곳곳에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가게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이 가게의 인상적인 마지막은 '사장님이 읽은 책' 섹션이었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집의 사장이 누구길래?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수북이 쌓인 그 책들을 보며 열독하는 사장님이군 하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사장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부부가 어떤 책을 보는지 괜히 관심을 보일 것이다. 나름 유명인이니 그들은 어떤 책을 보는지 들여다 보고 잠시나마 부부의 취향과 최근의 관심사를 공유하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괜히 나도 이 책을 읽으면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수 있을 것 같은 기대 심리가 작동할 수도 있겠다. 집 앞에 또 다른 대형 서점인 교보문고가 있다. 여긴 더 크고 다양한 책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선택을 기다린다. 다만 교보문고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어떤 책을 보는지 보다는, 잘 팔릴 책, 최근 인기 있는 책, 서점에서 판촉하는 책들을 만날 뿐이다.
디지털, 온라인이 대세인 지금이다. 옴니 채널로 온-오프의 경계 없이 잘 팔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라고 한다. 가끔 서점을 찾긴 하지만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을 생각해서 주문은 온라인으로 한다. 온라인의 장점과 편함이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서 서점에서 책을 사려는 생각은 잘 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직접 서점을 가면 온라인에서 큐레이션된 책, 실시간으로 잘 팔리는 책이 아닌 다른 종류의 관심을 만날 수 있다. 비록 대형 서점은 그 취향마져 판촉의 하나처럼 보인다만, 책발전소의 '사장님이 읽은 책'은 조금 다르게 해석된다.
사람들은 타인의 취향에 관심이 많다.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어디에 사는지 등등. 그러면서 혹시 나는 뒤쳐지지 않는지 걱정한다. 책발전소에서는 책에 대한 타인의 취향과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 가게의 카페라떼 맛에 대한 기억 보다는 공간이 주었던 인상과 함께 그 곳에서 발견한 새로운 경험이 오래 갈 것임을 확신했다. 오프라인은 경험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수없이 한다. 경험이란 반드시 직접 만져보고 발라보고 먹어보는 오감의 체험으로 제한할 수 없다. 온라인이 주지 못하는 다른 가치와 발견의 기쁨이 핵심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
둘만의 데이트였지만 어느 새 아들까지 합석했다.
아들과 책이 놓인 공간을 함께 돌고 있는데 '아빠 책도 여기 있느냐'는 질문에 멋쩍게 웃었다.
"그러게. 아빠 책도 이런 곳에 딱 놓여 있으면 참 좋을텐데"
<사진 출처> 책발전소 광교점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