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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내 곁을 떠나감을 느끼며

by nay

이사를 할 때 아들과 약속을 했다.

네 방이 생기면 혼자 자는 거야.

아들의 수면 독립은 우리 부부의 숙원 사업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자렴'하고 아이에게 인사하며 방을 나가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다. 솔직히 당분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워낙 예민하고 마음이 약한 탓에 작게라도 낯선 소리가 들리거나 환경이 바뀌면 잠을 뒤척이는 녀석이라 절대 혼자 잠을 자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 방에 침대를 넣어주면서도 아내와 이런 예견을 했다. 분명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여기서 자게 될 거야. 침구랑 침대는 좋은 거로 두자.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물론 잠들 때까지 엄마가 곁에서 지켜주긴 하지만, 잠이 들면 다음 날까지 혼자 자기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다.


주말에 아내와 데이트를 나서는데 아들 녀석이 어쩐 일인지 늦게 들어오라는 말을 하였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자기만의 자유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집을 나서서 한 5분 지났을까, 이번엔 문자로 '늦게 와'란다. 사춘기에 막 접어드는 것 같아 아내는 혹시 이상한 짓(?)하는 거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혼자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없는 걸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었지만 아직 그런 정도로 약삭빠르지는 않으니, 정말 본인 말마따나 혼자 있고 싶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렇게 그 녀석의 자유시간을 주고난 후, 저녁을 먹는데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더니 이내 고백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아빠 생일 선물을 사러 길 건너 백화점 매장에 혼자 다녀왔단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니, 오늘 아침만 해도 내 오래된 팬티를 자기 내복 위에 걸쳐 입고 슈퍼맨처럼 돌아다니며 까불거리던 녀석이 이런 대견한 행동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성격 급한 아들은 이내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준비한 선물을 꺼내왔다. 입냄새를 없애주는 제품이었다. 이거 혹시.. 아빠에게서 입냄새 나니 조심하라는 거니? (반전은 이거 말고 더 준비한 것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생일날 보여줄 것 같다. 그것 역시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만 속닥속닥 고백한 아들! 아내 말로는 본인이 사고 싶은 것을 다 산 것 같다나)


IMG_8487.JPG Extra strong이라니.. 정말 나 입냄새 나는 거니?


얼마 전 가족 나들이 길에 전기 스쿠터를 타보고 싶다고 졸라서 그러라 했다. 오며 가며 봐왔는데 속으론 꽤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처음엔 어설프게 운전하더니 이내 곧 잘 탄다. 혼자 저만치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기분이 싱숭생숭하였다. 어느새 저렇게 컸나. 멀어지는 그 순간순간이 '나 이렇게 컸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라 혼자 잘 가다가도 이내 뒤를 돌아보고 우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멈춰서 기다렸다. 멀리 혼자 가려니 아직은 불안한가 보다. 그래도 갑자기 커버린 모습이 어색하였다. 혼자 잠을 자고, 상점에 가서 선물도 고를 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유달리 부모와의 관계에 집착하던 아이였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 왔는데 그리 되니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 컸다.


대학에 입학해서 첫 1년을 기숙사에 보내게 될 때의 기억이 난다. 가족들과 함께 짐을 갖고 교내 안쪽 깊숙하게 위치한 기숙사에 도착했다. 인사를 하고 입구에 서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누가 인사를 하지는 않나 싶었을까. 그런데 다시 돌아보는 사람 없이 모두 씩씩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곧 성인이 되는 아들이, 이제 곧 스무 살이 될 막냇동생이 걱정되어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었나 보다. 그때 비로소 혼자라는 삶을 낯선 곳에서 시작하는 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쉬움과 섭섭함이 담긴 이별의 뒷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이제는 혼자 전동스쿠터를 타며 달리는 아들의 힘찬 뒷모습이 아쉬움과 함께 대견함의 뒷모습으로 기억될 것임을 안다.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뒤 돌아본 아들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너의 뒤에 든든하게 우리가 있음을 알렸다.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슬퍼지는 것도 있구나. 부모로서의 울타리를 거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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