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듣는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 더박스라는 책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부제는 ‘컨테이너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바꾸었는가’. 최근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서 해상 무역에 대한 정보와 동향을 잠시나마 본 적이 있다.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무역선의 이동과 활동으로 우리는 싼 가격으로 물건을 수출, 수입할 수 있다. 배로 물건을 싣고 나를 때는 당연히 컨테이너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처음 이런 방식을 도입했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해상 무역을 하더라도 사람이 등에 짐을 지고 배에 싣고 내리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런 상황을 답답해 하던 어떤 사업가가 컨테이너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처음엔 이런 방식을 모두 거부했다. 컨테이너라는 개념이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를 뿐더러, 그 자체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싣고 나르는 크레인 같은 부대 장비들 때문에 새로운 투자가 필요했던 것도 있다.
사업가로 성공했던 그는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해서 컨테이너만으로 물건을 운반하는 방법을 정착시키고자 한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기존의 방식을 혁신했던 때문에 과거 운송비의 1/30 수준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쉽게 정착되지 않았다. 당시 부두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노동자의 직업적 가치가 좋았고, 또 자기 일자리를 잃을 걱정으로 인해 크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컨테이너 방식이 도입된 이후에 5-6년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컨테이너가 새로운 방식이 되어야 함을 인지한 사업가들이 투자를 하고 노동자들을 설득하면서 점점 이 방식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기에 컨테이너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항구는 상대적으로 물동량이 적어서 2등을 하던 곳이었다고. 1등 항구는 굳이 새 방식을 채택할 이유와 필요성이 낮아 적극적 검토를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등 항구가 1등이 되는 역전을 이루어냈다. 잃을 것이 없으면 과감해 지는 법이다.
그나저나 이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하여 컨테이너 운반을 도입한 그 사업가는 어떻게 되었나? 큰 부자가 되었을까? 오히려 자신의 재산만 투자하고 거의 망했다고 한다. 성공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이후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본 것들.
혁신의 방해 요소 1 - 불편하지만,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좋다 (관성에 의한 거부 또는 새로운 생각에 반항)
혁신의 방해 요소 2 - 혁신 아이디어가 반드시, 당장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혁신의 방해 요소 3 - 1등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다. 기득권은 변화를 싫어한다 (성공 방정식에 도취)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통해 기존의 방식을 뒤엎기도 어렵지만, 뭔가 다른 생각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컨테이너의 급진적 혁신성이 끝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어쩌면 엄청나게 저렴하고 효율적인 운송 혁명을 이루어 냈기 때문이리라. 시간, 돈, 자원의 고민을 해소 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성공한 아이디어가 된 것이다. 물론 그렇게 성공적인 안착을 하기 까지 앞서 말한 방해 요소들을 극복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저항, 실패와 좌절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성장을 이끄는 제품이 있다면 그것은 고객의 어떤 고충을 제대로 해소했다는 의미다. 아이디어와 기술이 좋아도 고민을 풀어주지 못하면 그 한계는 명확하다. 연구의 방향이 기술적 성취와 자기 만족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회사를 17년 다녔지만 아직도 혁신이 뭔지 모르겠다. 아니, 더 오리무중이다. 앞에서 말한 방해 요소들을 겪어 봤고 좌절도 겪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없다고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 역시 없다. 좋은 기술로 무장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사라진 제품은 얼마나 많은가. 한 회사를 세계적으로 알린 제품이 한 때는 악성 재고 취급을 받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은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변화 없이 그대로 있는다면 그 결과는 도태와 퇴출이다. 그러니 새로움을 향한 생각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