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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n 06. 2022

취업하려면 어떤 전공이 유리한가요?

공부머리와 일머리에 대한 단견. 

강연을 나가면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다. 자주 받는 질문의 하나는 ‘지금 계시는 회사에 입사하려면 어떤 전공을 하는 것이 유리한가요?’이다. 취업을 앞둔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회사에서 해결해야 할 과업에, 연구직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전문성을 발휘하려면 이공계는 확실히 전공 분야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아주 명확한 주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딱 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채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의 일이란 좁고 깊은 하나의 주제로만 한정 지을 수 없는 법이다. 특정한 기술 주제 때문에 채용이 되었더라도 퇴사할 때까지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다른 연구 주제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페이스북 친구가 공감한다고 좋아요를 누른 글이 있어 가져왔다. 윗글에서는 스타트업 얘기를 했지만 내용을 보면 어느 회사에나 맞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보통 이공계 전문 분야의 전공자들의 착각은 기능적 능력으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으리란 점이다. 탁월한 기능적 능력 즉 공부 머리만을 일과 연결시키기 쉽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공부 머리와 연결하기 쉬운 것은 학벌이라고 본다. 채용에 있어 학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는 소위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단지 그가 똑똑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주변의 유혹을 이겨내기도 하고, 끈질기게 성과(성적)를 얻고자 하는 노력의 경험을 해 본, 즉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데 있어 트레이닝이 된 사람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 그러나 좋은 성적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완성되기보다는 부모의 합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과연 OO 대학의 졸업장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지나고 보니 공부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내 얘긴가 싶어 쓰다가 흠칫하였다). 성적이 좋았던 것을 과시하고자 함이 아니라, 유수의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들어온 동료들을 많이 겪어 본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데 공부 머리가 역할을 했다면 회사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머리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머리란 일을 하는 방법이나 요령이라고 설명이 된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배운 것을 잘 숙지했는지, 그걸 조금 응용할 수 있는지 판정해 보는데 집중한다. 기억력에 더해 어느 정도 응용력이면 적당한 수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잘 세팅된 환경에서 주어진 조건의 정답을 찾는 것을 기똥차게 잘한다면 그건 공부머리가 뛰어난 사람일 게다. 그러나 낯선 환경, 답을 찾아내야 하는 제한된 조건이 생기면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제한된 상황과 조건에서 창의적인 답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핵심은 창의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걸 찾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정답이 아니어도 된다. 회사 일은 정답보다는 적합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연구개발은 정답이 있지 않느냐고? 정답이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에 기술적으로 완벽한 만족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머리를 아래의 두 가지로 나눠보았다.

-주어진 과업을 처리하는 것: 어떤 경우는 공부머리의 연장선이 되기도 하고, 전공과 살짝 벗어나도 기본적인 배경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과업을 해결할 수 있다.


-회사의 일을 이해하고 과업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부수적인 것(전공과는 아주 무관): 기능적 능력 이상으로 회사에서 일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협업을 이끌어 내고, 필요에 따라 타협과 조율을 할 줄 알며, 때론 동료의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리더십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머리가 있으면 모르는 영역에서도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연구직의 특성상 어느 정도는 업무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니 앞에서는 일머리가 있으면 다 잘할 것이라며? 혹자는 기술이 아닌 휴먼 매니징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연구개발 부서에서 기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없이는 매니징의 달인일지라도 분명 한계가 있음을 지난 10여 년 간 보아 왔다. 한 분야에서 장인이 되면 생판 모르는 것이라도 일의 성격을 규정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인사이트가 있을지라도 아쉽지만 막히는 지점이 있다. 같은 이공계라도 제형 개발자와 피부 연구자 사이에 큰 간극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뛰어난 인사이트를 가진 사람도 업무의 성격과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한다. 쉽게 정리될 일인데 판을 키우는 경우도 있었다. 일머리로 좋은 성과를 낸 경험이 있다지만 그것은 때론 과거의 영광이고 전혀 새로운 업무를 이해하는데 벅차 하는 사례를 보아왔기 때문에, 일머리가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경험을 얻었다. 이런 현장의 어려움 때문에 안타까운 인재를 떠나보낸 경우도 있었으니 인사권을 가진 분들이라면 무턱대고 일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저기 배치하지는 말지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전공이 중요한가요?”에 대한 답은 이렇다.

당신이 채용될 때는 중요하다. 채용 시기와 회사의 연구개발 방향에 적합한 전공이라면 유리할 것이다. 어쩌면 당장 몇 년 동안은 꽤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꾸준히 성과를 얻고 싶다면 일머리를 갖기 위해 부딪히기 바란다. 본인이 일머리를 가졌는지 판정하기란 쉽지 않다. 따로 가르쳐주는 곳도 없다.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체득하는 것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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