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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04. 2022

진도가 안 나간다고 상사가 재택을 싫어해요.

그러면 재택근무에서 다른 성과를 보여주세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나름 청정지역이던 연구소에도 확진자가 부쩍 늘었다. 관리 부서에서 보내오는 확진자 안내 문자의 빈도가 잦아졌다. 본인만 걸려서 지나가면 다행인데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있어서 재택근무 또한 늘게 되었다. 특히 동거인이 걸리면 가급적 재택으로 근무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라는 회사 방침 또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5일의 일상 근무일 중에 물리적으로 오피스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업무의 진도가 빨리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서류만으로 충분히 업무가 구성되는 연구원도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연구원인지라 대부분은 실험이라는 행위가 있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종료를 하거나 다시 실험을 하거나,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과가 없으면 해당 업무는 진행 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간 업무보고를 보면서 진도가 부진한 것에 대해 어떤 임원이 챌린지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몇 주가 지나가는데 계속 같은 내용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뭐라 한 마디 했다는 것이다. 그걸 전하는 연구원의 입장은, 확진자 증가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재택이 늘고 있으니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업무 진행 중'이라고 쓰는 것이 불가피하다, 임원의 챌린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재택 때문에 실험을 못하고, 실험을 못하니까 결과가 늦어지고, 결과가 늦어지니 주간 업무보고의 내용이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오늘은 꼰대력을 한껏 발휘해서 상사의 입장을 대변해 보기로 한다. 


회사원에게 상사가 성과를 챌린지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잘 진행되는지, 매주 비슷한 내용이라면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그것이 재택 때문인지 아니면 실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 등을 알아보고 물어보는 것이 맞다. 매번 같은 내용을 적어 두어도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재택근무로 실험하지 못해서 결과가 없음. 보고 사항 없음’


이런 내용으로 업무보고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excuse me를 요청하는 건 주니어 정도가 가질 수 있는 태도다. 회사 밥 몇 년 먹었다면 적어도 업무 보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지 싶다. 


그렇다면 상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특히 연구를 위한 실험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일 때 말이다. 우선 언제든지 원격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페이퍼 워크로 할 일들을 미리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불가피하게 실험을 하지 못하면서 집에서 근무할 때는 사전에 정리해 둔 일을 처리하면 좋다. 평소 궁금하던 이론을 찾고 공부하는 기회로 삼는다. 과거 보고서들을 찾아보며 인사이트를 정리할 수 있다. 새로운 연구 주제의 키워드를 찾아내는 시간으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현업에 치여서 바쁜 일상을 보내면 당장 업무 보고에 적을 말은 많아질지 몰라도 내일을 위한 생각의 시간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연구자의 일이란 당연히 실험이 뒷받침되지만 회사 연구원이라면 다음을 기획하는 것에도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기획은 바쁜 몸놀림 보다 두뇌 놀림이 절실하다. 그리고 업무 보고에는 조사한 내용, 인사이트, 새로운 기획안을 적어보자. 


프로다운 회사 연구원이 되고 싶다면 더욱 자기 성과를 매니징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부디 재택에 대한 상사의 선입견을 섭섭해하는데 방점을 찍지 말지어다. 그런 감정 소모는 불필요하다. 차라리 오피스에서 일할 때와는 다른 성과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려고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https://www.hi-reit.com/working-from-home-vs-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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