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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ug 25. 2022

연구 발표의 기쁨과 슬픔

때로는 연구자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회사원에 방점이 찍히는 느낌이지만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거나 가설로 세웠던 결과가 데이터로 확인될 때는 즐겁다. 실험 데이터를 해석하려 애쓰는 디스커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그걸 보면 여전히 연구자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기쁘면서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 안도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책에도 썼듯이 ‘우리는 과학자가 아니라 회사원이라고 말한 선배의 오래전 일침이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한 임팩트만큼이나, 내가 정의하는 정체성에서 연구자로서의 가치를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깊숙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선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연구자냐 아니냐 하는 정체성의 문제는 적어도 내게 있어 훨씬 개인적 영역이다.


오늘은 그런 연구자의 시각에서 연구 발표의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누누이 말했듯 회사의 연구는 학교와 다르다. 이윤 창출과 조직의 존속을 유지하는 목적이 크기 때문에 때로는 무모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연구적 완성도는 아쉽지만 어느 순간 달리던 마차를 급히 멈추고 마무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일이 현실에서 쓴 맛을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연구 가치가 개발 가치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략적 의사 결정을 이유로 수억의 돈을 들이는 반면, 별로 돈 들지 않을 간단한 가설 검증에는 여러 차례 상사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어떤 때는 참 씁쓸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얼마 전 동료의 가족에게 일이 생겨서 거의 2주 가까이 자리를 비우게 되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세계 화장품 학회에 발표가 채택되어 거기에 논문을 내야 하는데, 자리를 비우고 있는 기간에 마감이 되어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그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신 운영진에 급하게 이메일을 보내 사정을 토로하니 딱하게 여겼는지 일주일 시한을 추가로 주었다.


급하게 복귀한 담당자는 열심히 논문을 완성했다. 현상적인 내용만 보는 것인데도 방법 자체가 세팅되지 않아 처음 시도해 보는 데다 현업에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일이다 보니 거의 일 년 넘게 진행했던 연구다. 옆에서 연구하는 내용을 지켜보고 함께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던 것이기에 연구한 내용의 규모나 깊이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나의 연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발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있다.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고 특히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는 과정은 지루한 반복과의 싸움이다. 특히 회사에서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경우, 추가적인 연구를 끌고 가기란 쉽지 않다. 그걸 더 잘 알기에 그가 일군 결과들의 묶음이 아쉽더라도 충분히 잘했다고 응원하고 손뼉 쳐야 한다. 솔직히 관리직에 들어선 이후엔 내 손으로 일군 데이터는 없어 아쉬움이 있지만, 동료의 성장을 돕고 그들의 결과를 더 가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시간과 노력의 결실이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되는 것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서 말한 연구자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가 작성해서 보내  내용을 들여다보며 수정하다 보니 금세 아쉬운 부분이 발견된다. 긍정적으로  때는  좋아 보이던 데이터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래, 이런 약점이 있었지, 그때 이런 실험을  했어야 하는데,  실험 설계를  정교하게 하지 못했을까, 자책하게 된다. 연구란 논리 전개가 치밀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을 설득할  있고 결론의 당위성이 확보된다. 회사 연구는 때로 구멍이   그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작은 물고기를 일부러 잡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걸  하나씩 잡아서 걷어 올리기 위한 자원의 소모가  이상의 가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  때는   마리 정도 작은 물고기는 잡아서 어디 수조에라도 보관해 두었어야 했던가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그제야 보이는 연구의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은 앞선 기쁨의 순간을 순식간에 반대의 감정으로 끌고 간다.


완벽한 연구가 어디 있겠나, 그렇게 자조하며 논문 투고를 마무리한다. 완벽한 폼을 가지고 골프 스윙을 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는데도 게임은 즐길 수 있다. 남들에게 많은 질문과 공격이 예상되는 결과를 모아 놓았어도 내가 이 정도면 잘했지 하는 만족감으로 일단 다시 기뻐하기로 해 본다. 연구하는 순간의 몰입, 거기에 수반되는 즐거움과 동시에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결과와 성과의 아쉬움에 대한 자책이 공존한다.


이런 기쁨과 슬픔의 반복을 통해 일을 배우고 성장한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내 일을 존중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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