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소년 심판>에서 새로 부임한 부장 판사가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소년 사건은 속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산적해 있는 수 많은 사건들을 하나 하나 관심을 가지고 꼼꼼히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판사는 부족하고 사건은 많으니 신속한 처리가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부장판사의 태도에 우배석과 좌배석 판사는 조금은 벙찐 얼굴로, 또 한편으로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부장 판사를 바라본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진짜 업무가 아니겠냐는 태도이다.
일이 주어졌다. 정해진 기간 안에 마케팅이 원하는 답을 찾는 것이다. 기존에 셋업 된 방법대로 실험을 했더니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었다. 그렇게 포기할 순 없다고, 다시 해보면 안 되냐기에 실험 방법을 수정해서 접근했더니 맞춘 듯이 딱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 수정된 방법이란 물질을 처리하는 순서나 횟수, 세포의 변경, 자극원의 변경 등 아주 간단한 것부터 복잡성을 띄는 것까지 포함한다.
일을 하다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실험에는 표준작업 지침서(SOP)라는 것이 있다. 이대로 따라 하면 적어도 양성 대조군(실험이 잘된 건지 확인하고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은 기대한 대로 결과를 얻게 된다. 표준작업 지침서의 존재는 결과의 신뢰성을 보증하는데 필요하고,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데 중요한 가이드가 된다. 즉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표준화 프로세스라고 볼 수 있다.
효율성을 중심으로 일을 하면 과업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험의 과정과 실험 물질, 데이터의 처리를 위한 최적화가 이루어진 것이므로 실험 데이터를 존중할 수 있다. 제대로 한 거 맞죠? 이런 얘기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하는 결과를 제시간에 얻어 납기일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든다. 실험자의 심리적 부담을 더는 역할도 있다. ‘나는 하라는 대로 했고 그래서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관리의 입장에서는 인적 물적 자원의 활용 낭비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적어도 허튼짓 할 기회가 줄어드니까).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효율과 최적화라는 단어만큼 회사에서 사랑받는 용어는 없을 것이다.
효율적인 업무에서 오는 모순은 없을까? 효율적 업무 처리를 걱정하는 이유는 어느 순간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직성 때문이다. ‘하라는 대로 한 것’ 이상을 고민하지 않거나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딱 거기까지만 도달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안타깝다. 루틴한 업무를 프로세스로 확립하는 순간 사고가 굳어지고 기계적인 반복이 일어날 뿐이다. A 조건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B를 시도할 생각조차 안 하거나 아예 빠른 결론을 내버리려는 시도가 생긴다.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상황은 결국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 기회를 놓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 더 극단적으로는 최적화의 이유로 최소 인원으로만 운영하게 되거나 비슷한 일을 더 능숙하게 처리하는 외부 자원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이처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들이 누적되어 어느 순간 대단히 효율적 조직이 되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효과성에 대한 챌린지가 생긴다.
효과성은 특정 목표를 향한 접근이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기존 방식을 해체하거나 변형시켜야 할 때 필요한 관점이다. 과학적 실험의 경우 효과적인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은 아니어도 충분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몇 개의 인자들에 약간의 자유도를 부여함으로써 실험 결과의 값을 극대화시킬 여지가 있다. 물론 연구자의 경험과 지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연구자 입장에선 효과성을 위한 자세와 일의 태도가 훨씬 좋다. 그러나 회사의 일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효과성은 자칫 자원의 낭비, 끝나지 않는 업무, 갈 곳을 잃은 시도로 남을 수 있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구축한 뒤에 이제는 효과적인 답을 찾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회사 업무를 X축은 시간, Y축은 (업무 처리의) 질적 수준으로 정의한 뒤 plotting을 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발전적인 형태는 효율에 기반을 둔 효과라는 이율배반적 결론에 이를 것임은 분명하다. 그것이 이른바 양손 경영일 수도 있고. 여기서 주의해야 할 인자는 아마도 시간의 축일 것이다. 시간적으로 아직 충분히 효율적이지도 않은데 효과적인 일을 할 준비는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든 반드시 효율의 기반 아래 효과적인 업무 처리와 질적 개선/변화가 이뤄진 답으로 변혁을 요구받을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 이후 이른바 리쇼어링이 늘고 있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있던 시절은 해체되어 경제성, 효율성을 극대화하던 시대의 종료를 지켜보고 있다. 효율성만을 강조할 경우 생기는 위기가 의외의 상황에서 나타난 셈이다. 효율성이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만’ 잘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도 이와 같다. 그렇다고 효율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결국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두 가지 서로 다른 성격의 일처리를 조화롭게 운영할 것인가, 이런 숙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양가적 특성을 갖는 일의 무게 축을 정의하고 구성원과 조율을 이뤄낸다면 양적, 질적 생산성 증대가 가능할 것이다.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한 정의와 내용은 javauser님의 글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