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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12. 2023

수단이 목표가 되면 길을 잃는다

회사에 입사했더니 식스시그마 운동(?)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굳이 운동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흔히 말하는 새마을 운동과 같은 느낌이 있었던 까닭이다(내가 새마을 운동 세대는 아니지만 대강 느낌은 알겠다). 당시 연구원 숫자가 대략 250여 명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든 사람이 관련 교육을 들어야 했다. 식스시그마는 격투기 종목의 급수 따기처럼 벨트가 있었다. 그린, 블랙, 마스터블랙의 단계별 진급을 각 팀마다 강제로 따게 만들었다. 모든 과제는 식스시그마 컨설팅을 통해 진행되었으니 그야말로 식스시그마 전성시대라고 하겠다. 과제는 DMAIC이나 DIDOV로 설계했다. 상급 벨트를 받은 연구원이 다른 연구원의 과제를 도와주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식스시그마를 통해 개선된 사항을 두루 발표함으로써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얼마나 좋은 건지 만천하에 – 사실은 경영진에게 어필하는 – 공개하였다. 기존과 다르게 연구개발된 소재와 제품의 혁신성은 뚜렷해야 했다.


얼떨결에 신입이라는 이유로 그린벨트를 지나 블랙벨트까지 열심히 내달렸다. 벨트 땄다고 상여금이라도 한 푼 챙겨주는 것 아니었지만 그땐 그렇게 해야 했다. 그래야 하는 줄 알기도 했고. 덕분에 당시 고작 2-3년 차 연구원이 사장님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도 얻었으니 나름 수혜자 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당시 모 박사님이 돈도 한 푼 더 안 주면서 이런 거 시킨다고 발표 자리에서 항변하 듯 말한 것이 기억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식스시그마의 정체성이 연구라는 영역에 그리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윗 분이 그렇게 일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체질 개선을 선언한 탓에 우리는 모두 실험실의 쥐 마냥 끌려 다닌 셈이다.


사회 초년생의 눈엔 식스시그마가 영원할 줄 알았다.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여기저기 발표하면서 식상해진 기법은 더 이상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다. 어느새 TRIZ라는 다른 기법으로 갈아탔다. 아, 그럼 앞으로는 TRIZ인가 싶었는데 그 사이에 연구원장이 바뀌고 모든 것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원장의 시대는 무엇이었는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개별로 열심히 하던 시절로 기억한다. 일하는 방식보다는 일 자체에 집중하던 때였다. 그 이후의 새 원장은 전혀 다른 일하는 방식을 도입하려고 4-5년을 애썼으나 끝내 정착시키지 못했다. 실패에 대한 이유를 바뀌지 않으려는 관성적인 연구원들의 행태로 꼬집을 수도 있으나,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하려던 욕심,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무지와 오해의 상황에서 무작정 내달린 잘못된 리더십도 꼽을 수 있겠다.


연구소에 도입되었던 클라우드 시스템에도 할 말은 많다. 정보 보안에 대한 이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다. 디지털이나 시스템 변화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 있는 편이라 그런지 나름 편하게 사용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시스템 사용의 속도와 안정성에서 문제가 있었다. 일을 해야 하는데 클라우드 접속이 안되어서 손을 놓는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단체로 접속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클라우드의 특징 중 하나는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접속이고 처음엔 아이패드 같은 기기에서 가능했다. 결국 보안을 이유로 회사 제공 노트북과 사내 접속 위주로 진행하니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결국 몇 년 지나 연구원들을 속 썩게 하던 이 시스템은 사라졌다.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적어보면서 하고 싶던 얘기는 이것이다. 클라우드니 애자일이니 식스시그마니 OKR이니 하는, 다양한 형태의 경영 기법, 일하는 방식들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세계와 시장이 변하고 과거의 노멀은 버려지고, 뉴노멀이 판단의 기준과 시대정신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실패하더라도 시도와 도전은 칭찬받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명언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그렇게 도입된 방법론적 변화와 시도가 업과 조직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비롯했는지 질문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일터에 적합한지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은 채 남들이 한다니까 좋아 보여서 일단 ‘진행시켜’가 되면 곤란하다. 즉 질문의 순서가 중요하다.


누구를 위한 진행일까


무릇 있어 보이는 말들의 향연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눈에 띄기 위해, 보여 주기식 경영 방식을 시도하다 보면 피해는 고스란히 구성원에게 전가된다. 더욱이 만약 그런 변화가 누군가의 정무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면 구성원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어진다. 정무적 판단의 맹점은 제대로 된 비판과 수용이 어렵다는 데 있다. 해야만 하고, 될 때까지 한다. 성공한 것처럼 보여준다. 여기엔 굿하트의 법칙이라고 알려진 말이 적용될 수 있다. 

"When a measure becomes a target, it ceases to be a good measure"

측정의 지표가 목적이 되면 더는 좋은 지표가 아니다라는 말은, 어떤 식으로든 목표만 이루려 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친다는 뜻이다. 본질을 놓치게 만든다. (운이 좋아서 또는 시대의 요구와 맞물려) 만약 성공하면 끈질긴 노력과 고집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공치사와 신화를 쓰게 되지만, 억지 성공의 옷을 입히려고 불필요한 프로세스와 내적 갈등을 동반할 수 있다. 과연 누구의 성공이고 무엇을 위한 일이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형태적 변화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대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인지하기 쉽고, 변하는 것처럼 보여주기에 좋다.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가 보다.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면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변태를 꿈꾼다. 훨훨 날아오를 기대에 부풀어서. 갑각류가 성장하기 위해 겉껍질을 탈피하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 같지만 결국은 덩치가 커지는 것일 뿐 본질은 같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도입해서 업을 다르게 정의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할 것이 아니라면, 새롭게 받아들이고 적용할 내용의 방향은 갑각류의 성장을 참고할 만하다. 지난 세월 이렇게 저렇게 구르다 보니 일에 잘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무엇이 제일 소중하고 좋았다. 화려하게 전면에 내세우는 그럴듯한 이름 대신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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