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말 감사하게도 브런치를 통해 모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커리어 강연을 했습니다. 연구직 소개를 위해 몇 차례 강연 기회가 있었지만, 어쩐지 모교의 초대는 더 반갑고 긴장되고 그렇더라고요. 뭔가 선배로서 더 좋은 내용으로 친절하게 많이 알려 주고 싶다는 욕심. 대학원생 대상이라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였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받은 몇 개의 질문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분들의 찐 질문이지 싶습니다. 이메일을 통해 좀 더 깊은 수준의 질문을 받았고 제가 드린 답변을 정리해 드립니다. 나중에 검색을 통해 연구직 취업에 대한 글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Q. 기업 연구소에 취직한 뒤 좋은 커리어를 위해서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요?
A. 질문을 다시 해석해 보면 ‘일잘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연을 통해 연구원으로서 기본 역량과 연차와 직급, 위치에 따라 필요한 역량이 조금씩 다르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중에서 특히 과제를 스스로 찾아내는 능력이란 주어진 일만 착착 잘하기보다는, 주도적으로 필요한 일을 제안하고 수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의외로 주어진 일이라도 시키는 일만 하고 끝내는 사람, 자기가 더 가치를 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시킨 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합니다. 당장 처음은 어려울 겁니다.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대신 회사는 바로 취업한 사람에게 아주 큰 기대보다는 회사의 조직 문화와 사람과의 관계 형성, 일을 배우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현업에 즉시 투입 되기도 하지만 좀 더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기다려 줍니다.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는 회사를 다니며 찾아오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조직 성과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접근하시면 어떨까 싶네요. 신입 사원에게 기대하는 건 조직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분을 전파하는, 보이지 않는 역할도 있습니다. 그러니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면 좋겠습니다.
Q. 강연 중 기업에서는 분업화가 매우 확실히 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로 분업화가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원에서는 한 사람이 한 주제에 대한 모든 실험 과정을 수행하는데, 기업에서는 이와 달리 각 실험 과정마다, 예를 들면 RNA를 추출하는 사람, cDNA를 합성하는 사람 등 실험 종류별로 분업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틀에서 분업화가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선배님께서 마지막 마무리에서 '남의 돈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언급하셨는데, 강연에서는 말씀하지 못하셨지만 회사를 다니며 아쉬운 점이나 힘들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A. 문의하신 부분의 분업화는 소재를 개발하는 부서/효능을 평가하는 부서/제형을 개발하는 부서와 같이 좀 더 큰 단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무 차원에서 RNA prep, cDNA 합성, qPCR 따로.. 이런 정도까지 세세하게 나누지는 않습니다. 답변이 되었겠지요?
아쉽거나 힘든 점을 ‘연구원’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우리도 조직의 일부이기 때문에, 다른 부서나 경영진에서 연구소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던가 평가, 협업하는 과정 중에 생기게 되는 기대와 실망 같은 부분이 크겠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도 당연히 있고요, 직장은 더 heterogeneous 하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를 하면서 풀어가는 과정이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하면서 하나의 성과를 만들어 가는 성취감 때문에 또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개인적으로 학위과정 중 분자생물학 관련 실험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논문에는 게재될 연구 결과이지만, 어떤 실험은 타 실험실에 의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제 손을 거치지 않는 실험도 이 실험에 능숙한 경험이 있고 데이터를 다뤘다는 역량으로 기술하여 지원할 수 있는 걸까요? 물론 모든 실험을 다 직접 해보고 능숙하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는 점이 사실입니다. 어디까지 특정 실험의 역량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위의 상황처럼 직접 다룬 실험 경험이 부족할 경우, 더 큰 실험실의 포닥 혹은 중소기업 계약직 등 타 직무에서 실험 경험을 늘리는 것이 대기업 취업을 위해 나은 투자 일지도 궁금합니다.
A. 다양한 실험 기술을 갖고 있다면 그건 기업이든 학교든 본인의 자산이 됩니다. 그걸 이용해서 해볼 수 있는 연구의 깊이와 범위도 당연히 더 확장되고 넓어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실험 툴이나 기술을 다 능숙하게 다룰 수는 없지요. 현대의 연구는 내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성과를 만들어 가는 것이 보편적이니까요. 내가 진짜로 할 수는 없고, 실험하는 것을 옆에서 봤다거나 데이터 처리를 할 줄 아는 정도인 경우로 보이는데요. 저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회사에 해당 기술을 매우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면접관으로 그가 들어와서 실무적인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는 취업을 했다고 가정하고, 당신이 그 기술이나 실험의 전문가니까 관련된 업무를 프로젝트로 주면 어떨까요? 어떤 이야기인지 잘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실무 경험이 많으면 아무래도 다른 취업 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회사의 일이 내 능력을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곤 하지만, 신입이나 연차가 낮은 경우에는 당연히 학습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특정한 실험법 한두 가지로 취업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기본기를 잘 쌓았는가를 잘 어필하고, 자신의 특장점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