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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n 02. 2023

230개의 파일을 버리지 않는 이유

나는 집에서 '버리기 대장'이다. 많은 것을 빠르게 버리는 탓에 아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버리는 명분은 이미 시한이 지났거나, 별다른 효용 정보나 쓸모가 없거나, 낡아서 쓰지 못하거나 등의 기준 중에 한두 개는 부합한다. 무작정 아무거나 버리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소심하게 여기서 항변한다).


회사 컴퓨터 바탕화면에 ‘참고 문헌’이라는 폴더가 있다. 그 안에 이 글을 쓰는 현재 212개의 항목이 들어 있다. 대부분은 단일 파일이지만 일부는 폴더라서 전체 파일을 모두 합하면 약 230여 개쯤 되지 싶다. 참고 문헌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말 그대로 참고용이다. 고백하자면 매일매일 참고하는 것은 아니다. 저장한 날짜를 보니 2021년부터, 즉 내가 이 업무를 시작하면서부터 모아 둔 것들이다. 여기엔 휴지통에 버리지 않고 남겨둔 것들이 모여 있다. 앞서 말한 버리는 기준으로 보자면, 당장 쓰이지는 않더라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유용한 정보를 아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삭제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연구라는 것, 업무라는 것을 하다 보면 특정한 정보, 구체적이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문장이나 그림 같은 것이 꼭 필요한 때가 있다.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구글링 한 뒤 어렵게 찾아 놓고 보면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사실 일부는 그런 이유로 버리지 못한 것도 있다. 다시 찾으라면 한참 헤맬 것 같기 때문이다.


평소엔 괜히 용량만 차지하는 것만 같은 이런 정보와 자료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무언가를 제안해야 하는 때다. 연구자에게 있어 레퍼런스란 보물 창고나 다름없다. 보통 우리가 하는 업무(과제)는 기존의 것을 모아서 발전된 시스템으로 만들거나, 남들에게 있지만 우리에겐 없어서 도입해서 세팅하는 것들이 많다. 이럴 때 레퍼런스는 의사 결정의 이유가 되는 확증편향 도구로써, 그리고 확신과 자신감을 갖도록 든든한 지원군으로써 작동한다. 이날을 위해 휴지통에 던져 넣지 않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모아 두었다고 다 유용하지는 않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다분히 고리타분한 표현이 걸맞게, 버리지 않은 자료들의 가치가 빛나기 위해서는(즉 과제를 제안하는데 유용하게 쓰이려면) 다음과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검색할 것

-쓸모를 판단할 것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어 보이면 일단 쌓아둘 것

-가끔씩이라도 들여다볼 것

-제목만 보고 내용을 유추할 수 있게 적절한 제목으로 바꾸어 둘 것

-(파일과 무관하게) 평소 조금씩은 해보고 싶은 일, 해야 할 업무를 생각해 둘 것

-관련된 생각을 규모 있게 발전시킬 것(with 모아둔 자료)


매번 과제 제안 기회를 요구받을 때마다 평소 생각이 부족하거나, 자료가 없으면 완성도 있게 발전시키기 어렵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도 환영받을 수 있으나 아무래도 주장에 힘이 실리려면 뒤를 받쳐 줄 근거가 있는 것이 훨씬 좋다. 이런 준비를 평소 해 두면 안 그래도 바쁜 일상, 조금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시간과 자원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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