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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ug 09. 2023

연구 발표에도 서사가 필요하다.

최근에 후배가 좋은 발표 기회를 얻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해서 가져왔길래 그냥 적당히 보고 돌려보내려니 아쉬웠다. 시간의 흐름대로 구성하면 될 일이지만 어쩐지 임팩트가 없었다.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조금 심심하지만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개, 다른 하나는 연구 배경을 강조하면서 기술 개발의 필요성과 절박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게 되면 학부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졸업 논문을 발표해야 하는 수업이 하나 있었다. 대부분 연구 논문이란 것이 내가 왜 이 연구를 했는지(배경), 목적과 가설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떻게 접근했는지, 결과와 결론은 무엇이다..라는 흐름을 갖는다. 이걸 벗어나기도 어렵고, 굳이 비틀어 가면서 발표할 이유도 없다. 연구 주제가 흥미로워서 관련된 사람에겐 재미가 있을지언정, 학문적인 성취와 의미와는 별개로 발표 자체는 사실 별 재미가 없다. 정해진 틀을 따르고 무미건조하기 때문이다.


내 졸업 논문 주제는 락토페린이라는 우유 성분에 대한 연구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걸 어떻게 하면 좀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시간만 때우고 대충 해도 되는 것이지만 그게 싫었다. 굳이 튀고 싶은 욕심이라도 생긴 건지. 연구 주제인 소재가 우유의 성분이니까 자연스럽게 ‘우유송’을 떠올렸다. 딱 맘에 드는 것을 플래시 파일 형태로 된 걸 구했는데 이걸 파워포인트에 심고, 클릭하면 노래가 재생될 수 있게 하려고 그 방법을 검색하고 테스트하는데 노력을 꽤 기울였다. 어차피 디펜스(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교수를 비롯한 심사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를 위해 자료는 완성되어 있었으니 인트로를 흥미롭게 만드는데 공을 들인 것이다. 어쨌든 이런 노력 덕분인지, 적어도 한 명의 후배는 내 발표가 참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으니 그걸로 성공한 셈이다.


연구자들의 발표는 대게 심심하다. 재미와 즐거움보다는 사실의 전달, 발견의 놀라움과 새로움에 방점이 찍힌다. 특정한 주제의 학회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역시 전문성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이 기본이라, 때로는 배경에 대한 설명도 불친절한 경우가 많다. 굳이 설명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문송합니다’를 외치는 비전공자들에게 기술을 전달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아니, 이과생이 이과생에게 연구 과제나 기술의 성과를 발표할 때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회사 업무는 워낙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관계로, 자연과학이라는 큰 범주의 배경은 같아도 세부 전공과 지식의 깊이, 넓이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내게는 기본적인 소양이 남들에겐 외계어처럼 들리는 것이다. 하여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쩐지 그 사람은 참 말을 잘해..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완전히 이해하도록 만들 수는 없어도 일단 흥미 유발이라도 하면 성공이다. 물론 '말만' 잘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이 회사의 연구자라면 더욱 그렇다. 많은 연구자가 듣는 사람들의 이해도가 낮은 것을 탓한다. 전공과 지식이 다르면 짧은 발표 시간에 이해도를 끌어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연대기적 구성을 꾸미는 것은 편하지만 안일한 접근이다. 시간의 흐름이 사실과 발견이라는 성격의 연구 발표에 가장 적합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전개 방식은 아니다.


대신 나는 ‘서사’를 넣으라고 강조하고 싶다. 거짓으로 꾸민다거나 달변가가 되라는 건 아니다. 말을 번지르르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조금만 비틀어 생각하기를 바란다. 듣는 사람들이 기왕이면 내 성과에 조금이라도 빠져들게 만들면 좋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소설, 드라마,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연구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전달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구성을 바꾸고, 몰입할 수 있는 서사의 구조를 갖추려고 고민 하기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이야기는 새롭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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