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프 스윙은 쉽지 않다. 초보는 일단 볼을 제대로 쳐내기 어렵다. 볼을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면 더 멀리, 더 정교하게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더욱 어렵다. 나는 같은 스윙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매회 조금씩 다르고 그 결과물 또한 상관성 있는 결과로 나온다. 즉 잘 치면, 멀리 쭉 날아가고 아니라면 엉뚱한 곳에 철퍼덕 떨어져 버린다.
잘 치려면 스윙 자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스윙 시퀀스마다 특정한 자세가 요구되는데 이걸 자세히 잘 뜯어보면 적절한 타이밍과 자세가 교집합을 이룰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즉 타격에 최적화된 자세는 이전의 다른 단계 - 예를 들면 테이크어웨이(골프 클럽을 뒤로 빼는 시작)나 백스윙(완전히 위로 올려서 타격 준비가 된 순간) - 에서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타격하기 바로 직전은 특히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소위 역 K 자세(K자를 거울에 비친 모습)를 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모양을 만드는 연습을 자꾸 하면 근육이 기억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0.5초 이내의 순간적 자세를 과연 근육의 기억으로 만들어 낼 것 같지는 않다. 프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들도 억지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과 결과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형태로 구현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영상 분석은 결과물의 논리와 이유를 해석하는 것뿐이다.
2.
일을 하다 보면, 특히 연구라는 것은 과정이 중요한 일들이 있다. 축적의 힘이 쌓이는 분야와 주제가 있다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툭 결과가 나오는 법은 없다. 만약 내 연구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로 이상적인 결과가 얻어지면 오히려 의심하는 것이 맞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연구에서도 가끔 나타난다. 처음 해 본 실험인데 오랜 시간 숙련된 사람처럼 결과를 얻는 경우이다. 정말 초보의 행운일 수도 있지만, 이전에 다른 실험과 연구를 통해 훈련된 결과물이 전혀 다른 실험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더 힘을 싣고 싶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일단 해보라고, 결과 얻어 보라고 하는 요청은 그래서 더 씁쓸하고 불만스럽다. ‘결과를 얻지 못할까 봐 부담스럽다는 감정이 아니다. 초보도 적당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건지, 부단한 노력의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인지조차 판단하지 못한 채 무작정 뛰어들어 보라는 요청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대게는 연습하고 좌절하고 깨닫고 인사이트를 얻는 지루한 반복의 끝에 비로소 ‘믿을 수 있는 괜찮은’ 성과가 내 손에 쥐어진다.
3.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고, 물론 어쩌다 보면 아주 제대로 정타를 때려 멋지게 골프공을 보내기도 한다. ‘드디어 깨달은 건가?’ 싶어 조금 전 기억을 붙잡고 다시 휘둘렀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건 실력이라기보다는 운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면 똑같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일도, 연구도 비슷하다. 상황 논리로 밀어붙였을 때 운 좋으면 처음은 넘어갈지언정 나중에 자칫 양치기 소년이 된다. 물론 내일이 없는 극단적 위기의 순간엔 임시방편 넘어갈 불안한 용기도 필요한 게 회사원의 생존법이긴 해도 연구에서까지 그러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