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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an 16. 2024

실험대에서 물러 앉은 연구자의 고민

첫 번째 책, <나는 연구하는 회사원입니다>를 출간할 때부터 가졌던 자격지심이 있었다. 기업 연구소에 근무하며 현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내 정체성은 ‘연구자’가 맞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면 으레 위축이 되는 지점이 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입사하고 초반 3-4년 동안의 집중적인 연구와 실험 경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내 업무는 사람 관리, 과제 운영, 조직 운영 및 전략과 같은 관리자의 영역으로 포지셔닝되어 있던 까닭이다. 보통의 연구원들이라면 실험과 결과를 통해 자기를 증명해 내는 순간이 일반적이지만, 어쩐지 난 그곳을 빠져나와 있었다. 대신 업무의 주제나 분야를 바꿔가며 리더십을 보이는 일에 더 많은 훈련과 실전 감각을 익혔다. 리더로서 주도적으로 실험 설계에 참여하고 논문 발표도 하는 때는 있었다지만, 디테일한 실험의 기술적 접근은 저 오랜 시절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관리직 역할이 나쁘진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보다 빠른 시기에 시작한 매니징은 나름의 성취감이 있어서, 연구자로서 얻는 성과와 다른 즐거움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건 아마도 회사였기에 가능했으리라.


그러니 누군가에겐 쉬운 실험 방법조차 가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곤 했다. 생물학에 대한 배경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지 않고 그래도 어찌 될지 몰라 논문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 큰 틀은 이해했지만, 만약 기술적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잘 내지는 못하는, 그런 답답함을 남몰래 갖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 ‘그 사람 이런 쉬운 것(지식이든 기술이든)도 잘 모르더라고요!’ 공격이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다녔다. 박사 학위를 받을 때 내 손으로 논문의 모든 그림을 그려 놓지 못했다는 점도 자신 없음에 한몫했다. 다른 박사님들은 어쩜 그리 자기 전공이 아닌 부분에도 해박한지 비교될까 봐, 들통날까 싶어 마음 졸인 순간들도 있었다. 그런 까닭에 브런치에 연재하는 책이나 글의 대부분 내용은 연구자로서 실험할 때 겪은 고충과 좌절, 극복, 성취는 없고, ‘회사원’ 페르소나에 맞는 내용들로 구성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나는 연구자라는 자부심이 있기에, 갖춰야 할 소양이나 자세에 대해 개똥철학이라도 가지고 있는 바 그건 글로 적기도 하고 직접 후배들에게 말로 전하는 편이다. 다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한 것은, 연구에 대한 적당한 지식과 경험만 있으면 어디 가서 아는 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나쁘게 이용하면 말만 앞서는 사람이 된다. 기술 전략이나 큰 그림을 짜는 일에 투여되다 보면 장밋빛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 기회가 생긴다. 이때 어쭙잖은 얕은 지식, 피상적으로 이해한 현상들, 어디서 주워듣고 온 그럴듯한 미래 지향적 기술을 적극적으로 엮어서 발표할 수 있다. 그러나 천성이 그런 타입은 아니라서 다행히 뻥치는 소년은 되지 못했다. 그건 내가 지켜야 하는 연구자적 양심이기에.


그래서인가? 나를 아는 어떤 사람들은 ‘너는 대학의 교수가 어울려’라고 했다. 돌아보니 차라리 연구라도 진득하게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생기긴 한다. 계속 실험하고 논문 쓰며 지냈다면 정말 회사를 떠나 어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실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 말에 반감이 있었다. 딴에는 내 성격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선생님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였을게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 사실은 넌 지금 이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더 맞는 곳이 따로 있어, 그런 의미라면 회사에서 지지고 볶으며 지나 온 내 커리어가 부정받는 느낌이다.


관리자라는 직무의 불안함은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자리를 내놓으면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데, 내 손으로 성과를 구현해 낼 줄 아는 실무 감각과 현장 경험이 필수적이다. 사고 실험이라는 것도 있다지만 회사에서는 현실화되지 않을 그런 것은 대게 무의미하다. 그걸 손에서 놓은 지 너무 오래된, 나 같은 관리자는 다시 세포를 키우고 배지를 갈아주며 새로운 기계를 다루는 일이 괜히 두렵다. 지금 후배들 중에 매니징과 실험을 함께 하는 경우를 보면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선배들 중에 과감하게 연구자로서 실험을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한 성과를 내는 것 역시 부럽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였다. 관리자라는 커리어 패스를 선택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원하던 방향과 위치에 이르지 못한 나를 보니 역시 옛말이 하나 틀릴 것 없어 보인다.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해’


이런 생각을 10년 전쯤 했다면 어땠을까? 현재는 과거의 수많은 기회와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택했던 결과의 누적이니까. ‘교수 뽑는다는데 한 번 지원해 볼래?’, ‘우리 회사로 오지 않겠니?’ 물어봤던 예전 회사 사람들 질문을 돌아본 들 달라질 것은 하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난날 선택을 존중하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수많은 결정의 기회 속에서 후회하지 않을 방향을 계속해서 골라서 전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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