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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an 06. 2024

겸손하면서 나를 내세우는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한다면.

새로 부임한 임원에게 나를 소개할 자리가 있었다. 서로 낯선 사이에 회사에서 만난 관계에서 하기 편한 건, 그동안의 이력을 말하는 것이다. 소개하면서 스스로 지난 20여 년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초반 10년 동안은 얼굴 피부를 중심으로 연구를 했었다. 이후 한 때는 임원 스태핑을 했다. 다음엔 얼굴이 아닌 머리(두피) 연구를 했고, 이후 3년은 해외 연구소 근무, 복귀 후 현재까지는 피부와 두피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소재의 효능을 증명해 내는 업무로 이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내 커리어가 어떻게 흘러 왔는지, 최초 10년 이후엔 변화가 많았음을 새삼 확인했다.


그런데 한참 뒤 그 임원을 챙기는 팀장을 통해 전달받기로는, 그가 나에 대한 인상이 별로였다고 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대부분 이력이 실패하거나 안 되는 바람에 다른 업무를 하는 형태로 이어진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팀장은 대체 왜 그렇게 얘기를 했냐고 타박했다. 나를 잘 아는 팀장이었기에 내가 한 얘기들을 다시 나열하고 거기에서 부정적으로 보였던 의견들은 배제한 채,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다시 설명을 했더니 임원이 아, 그런 거냐, 그렇다면 괜찮겠다고 반응을 보였단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변호해 준 팀장의 능력에 감탄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한가, 평소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언어 습관과 행동이 몸에 배어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정말 부정적인 결과들 위주로 설명을 했나 생각해 보니, 임시 조직에서 팀으로 발령 내지 못한 사례와 해외 근무 시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한 적 있는 것이 퍼뜩 생각났다. 지나가는 말로 한 것 같은데 듣는 사람 입장에선 '이 사람은 무슨 능력이 있는 거지?'와 같은 질문이 떠나지 않았을 수 있겠다.


Fact 중심으로 상황을 전달하면서 나름 humble 하게 보이고 싶어 덜 포장한 탓도 있을 것이다. 만약 기회가 되어 같은 얘기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을 발라내어 다시 나를 소개한다면, 그동안 없었던 전문성과 지식이 필요한 두피 연구를 위해 공부하고 그 결과 카이스트와 공동연구를 만들어 낸 전력이 있는 사람이 된다. 해외 근무를 자원해서 경쟁을 뚫고 선발되었고 글로벌 상대와 파트너링을 하는 것을 배웠으며, 과제를 도모하면서 내외부 관련 부서의 이해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를 배워 온 사람이기도 하다. 개인의 성과와 역량을 높이기 위해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찾은 적극적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면 왜 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겼을까? 개인이 아닌 회사의 성과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백방으로 노력하며 뭔가 해보려 한 일들이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에 딱 꽂혔다거나, 회사 기술을 한 단계 드높이는 기회 요인이 되었는가를 물어볼 때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멋진 성공 사례와 성취의 경험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보면 최근 10년은 그보다는 고민과 도전의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잘한 것도 있지만 부족한 것도 진짜니까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실패 사례를 경험하면서 지난한 시기를 보낸 사람이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 자기 평가를 내려버린 건 아닌지.


어떤 경험을 성공으로 볼 것이냐 실패로 정의할 것이냐 하는 건 관점의 차이에서 오기도 한다. 객관적 실패 사례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때로는 상황 논리가 압도하는 조직 생활에서 버티면서 성장한 나를 굳이 나쁘게 포장할 이유 또한 없음을 깨달았다.


자기 PR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의 이력을 전혀 모르는 외부 인사에게 하는 소개, 프레젠테이션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가벼운 티타임 정도로 여겼지만 실은 상대가 나를 평가, 판단하는 자리였음을 간과한 잘못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았다는 사실에 괜히 억울하다. 자기 객관화는 하되 잘한 것은 잘한 것으로 자기 확신을 가져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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