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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08. 2024

긴장을 놓은 실수는, 부끄럽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학교도 처음, 회사도 처음, 연애도 처음. 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처음의 연속이다. 


처음 새로운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익숙하지 않은 만큼 손과 몸과 마음에 익히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반복하여 숙달되면 그때부터는 처음보다 덜 신경 쓰게 된다. 익숙해지면 어지간한 어려움이 있어도 척척 완수한다. 참 신기하다. 마치 애초에 어색함 조차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반복되는 작업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긴장을 덜 하게 된다. 모든 일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어떤 수준’이 있다. 


그걸 놓치면?

실수가 생긴다. 


일 년에 100편 이상의 내부 보고서를 내는 파트의 리더를 담당하고 있다. 나도 가끔은 보고서를 쓰지만 주로 다른 사람들이 실험을 하여 결과를 얻고, 그걸 보고서로 작성한다. 내 업무 중 하나는 바로 남이 쓴 보고서의 검토 작업이다. 처음 다른 사람의 보고서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땐 의아했다. 자기 보고서를 왜 검사받지? 자신이 없나? 결과를 잘 얻었으니 그냥 쓰면 되잖아! 그러나 직접 해보니 누군가는 검토를 해야 할 이유가 명쾌했다. 때로는 치명적인, 보통은 은근히 작은 오류가 있다. 오타 발견, 보고서 번호 잘못, 그래프의 표기 오류처럼 실수에 가까운 것들부터 결과 해석의 방향과 의미를 결정해야 하는 것까지 실로 다양하다. 작업자 스스로 검토할 땐 나오지 않던 게 꼭 남의 눈으로 볼 때 찾아진다. 훈수 두는 사람이 더 판세를 잘 읽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나를 거친 보고서의 경우, 일단 넘어가면 전결권자에게 쭉 간다는 것이다. 내가 놓치면 최종 결재까지는 오류를 발견할 기회가 없다(정확히 말해, 없는 것은 아니나 거의 기계적 결재선을 지나가기 때문에 그러하다). 나 다음으로 결재하는 사람들이 두 명이나 있으니 비단 나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첫 번째 게이트라는 무게가 있다. 책임지는 결과물에 뜻하지 않은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등에 흐른다. 표현이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렇다. 응당 발견했어야 하는 오류를 찾지 못하고 놓친 부분에 대한 부끄러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꼼꼼히 점검하지 않은 나를 들킨 것이 싫어서이다. 


돌이켜 보면 그런 실수가 나왔던 때는 이제 할 만한데?라는 만만한 생각이 앞설 때였다. 대충 본 뒤에 ‘잘 썼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왜 아니겠는가? 합을 맞춰 온 지 몇 년이다. 쓱 훑어보면 '됐네' 싶은, 나도 사람이니까 귀찮은 날이 있다. 


오늘 누군가의 보고서를 검토하다 보니, 이 친구가 순간적으로 많은 걸 놓쳤군 하는 생각에 화가 좀 났다. 게다가 귀찮았는지 바빴는지 모르겠지만 이전 보고서 내용의 일부를 복붙 하였으니 실망스럽지 않겠는가. 실험의 목적이 전혀 다른데 결과의 해석이 잘못되었다. 단지 내부 검토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면 더 혼날 일이다. 뻔하디 뻔한 반복적인 일처럼 보이는 순간의 느슨함을 경계해야 한다. 


높은 긴장도는 아닐지라도 적절하게 유지해야 일의 완성도를 지켜낼 수 있다는 당연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만만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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