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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an 21. 2024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면

이연실 대표 '팔리는 책의 비밀' 강연을 듣고

<에세이 만드는 법> 책 속의 문장들 중에서.

"에세이는 정의하기 어려운 좀 이상한 장르이다. 문학이면서 '문단'의 경계에선 비껴있고, 자서전, 심리, 인문, 자기 계발, 실용 등에 발을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에세이 편집자로서 그런 애매한 중간성과 경계 없음의 자유로움을 좋아하게 되었다."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다. 에세이를 판다는 것은 작가가 제 삶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하지만 편집자는 이걸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 아니므로 재미와 감동의 도화선을 독자 마음에 연결해 불꽃을 터뜨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편집자의 치밀함이 성패를 좌우하는 영역이다."


작년 말 추웠던 어느 목요일 저녁, 온라인으로 출판사 '이야기 장수' 대표 이연실 편집자이자 작가가 말하는 '팔리는 책의 비밀'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그녀의 책 <에세이 만드는 법>도 읽게 되었다. 제목만 들어도 알 법한 베스트셀러의 편집자가 친히 팔리는 책에 대해 알려주겠다니, 어설픈 작가의 입장에서 꼭 듣고 싶었다. 아니 들어야 했다.


진정성과 간절함이 있는 글은 충분히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돈을 주고 사게 만드는 재화의 개념에서 바라보는 책은 엄연히 다르다. 안타깝게도 팔리는 글의 기술(조건)을 가진 책은 많지 않다. 편집자 입장에서 좋은 글은 그냥 지나 온 인생 말고, 하소연 말고,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번에 8000건이 넘는 브런치 출간 투고를 빼놓지 않고 읽어봤다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제발 '퇴사한 얘기, 퇴사하고 여행한 얘기, 육아/결혼/이혼 얘기, 아이 키우는 얘기, 돈 많이 번 얘기, 독서에 관한 얘기' 그만 쓰라고. 제법 과격해 보이는 이 표현에는 다른 뜻이 있다. 그 어떤 삶이든 작가 자신에게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말로 그만 쓰라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대신 이렇게 제안한다.


'시간과 공간을 좁히세요'.


특징을 가진 이야기의 글감들이라도 평범한 연대기에 그치면 뾰족함을 잃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 바로 작가다 보니 이것도 쓰고 싶고, 저 얘기도 들려주고 싶고, 내 관심의 수준을 여기저기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내 원하는 걸 모두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적당한 제약을 두는 것이 더 날카로운 작품을 내놓는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인이나 저명한 작가의 책이라면 시간과 공간 따위도 극복할 수 있겠다만 자칫 잘못하면 나무야 미안해, 가 되기 십상인 무명작가들에겐 승부수가 필요하겠다. 적당한 예시가 마땅치 않아 내 경험만을 돌아보면, <나는 연구하는 회사원입니다>가 연구직 회사원이라는 시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적절하게 좁혀 놓은 이야기였고, <요즘 마흔>은 비교적 두루뭉술한 - 어정쩡한 - 40대가 살아온 날에 대한 고백에 해당했다. 주변인들의 평은 <요즘 마흔>이 더 좋았다고 하지만, 정작 책을 낸 후 저자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부름을 받은 건 바로 전자의 책이었다.


<에세이 만드는 법>에는 정제된 표현으로 다듬어져 제법 우아하게 쓰여 있음에도, 하나의 에세이를 '성공' 시키기 위해 편집자와 출판사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전쟁터 같은 출판업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지 짐작이 간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가 궁금해져서 구글에 검색을 했다. 나는 사실 그 본문이 궁금했던 것인데, 연관 검색어에 '라면을 끓이며 논란'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 내용인즉, 어떤 출판사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출간도 되지 않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엉터리"라는 글을 올려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이었다(아마도 사전 예약 등을 받으며 출간 순위를 강조하려다 보니 이런 일이 있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이에 <라면을 끓이며>의 출판사 문학동네는 그 내용을 쓴 대표를 허위사실유포죄와 명예훼손죄로 손해배상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문학동네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해프닝. 이미 꽤 오래전 이야기이고 지금보다는 책을 읽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았을 때지만 그때도 책을 팔기는 어려웠나 보다.


이 웃지 못할 베스트셀러 집계 사건을 보니,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때로는 과장되게 쓰는 바람에 작가마저 부끄럽게 만든다는 책의 '띠지'에 대해 편집자의 고뇌, 작가와 갈등 아닌 갈등을 다룬 챕터의 내용이 생각났다. 자극적인 캐치 프레이즈가 아니면 한 권이 책이 스치듯 지나치는 무관심한 독자의 손에 선택될 기회는 적다. 참 고단하구나 싶다. 물론 나 역시 그녀가 믿는다는 '최고의 마케터는 결국 그 책'이라는 출판업계의 말에 동의하지만(실은 동의하고 싶지만), 역시 어떤 제품이 '팔리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과 그걸 확보하기 위한 판매자의 노력은 책을 쓰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브런치에는 에세이 작가가 많다. 작가로서 잘 자리 잡고 싶어 글 쓰는 법에 대해서 고민 많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편집자와 출판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면 글을 쓰는 방향과 기획을 하는데 더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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