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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l 04. 2024

내 경험이 전부는 아니다.

<말 그릇>(김윤나)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발달심리학자인 보울비는 우리는 매일 많은 양의 정보를 다루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머릿속에 공식을 만들어간다고 설명한다. 공식은 말하자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틀과 같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공식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거나 그 공식에 스스로 갇혀 있거나 다른 사람의 공식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들을 세워놓고 잘잘못을 따진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는 편을 가른다. “


얼마 전 과제 계획 때문에 예전 조직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예전에 OO제품, 잘 계획된 과제를 통해서 개발된 것 아니잖아. 계획 열심히 해서 과제 운영하려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게 항상 잘 된다는 보장은 없어. 소위 말하는 Serendipity가 필요하다고’


반대로 다른 회사에서 온 현재의 조직장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있던 회사에서는 이렇게 고민하고 설계부터 열심히 계획한 과제가 성공적으로 제품을 런칭하는 결과로 이어졌지요’


잘 된 설계로부터 시작되는 과제도, 때로는 우연과 우연이 만나 폭발하듯 성공한 업무도, 둘 다 좋은 제품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데 이견은 없다. 다만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더 성공의 확률을 높여주느냐, 이에 대한 답변이 단순히 믿음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과거의 영광과 성공 방정식이 현재에도, 또는 미래에도 유효하리란 가정은 단언컨대 틀렸다. 시장, 고객, 기술, 환경.. 모든 것이 빠르고 크게 변하는 시대에는 그야말로 유연성이 요구된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의 판단은 대게 자기 경험을 벗어나기 어렵다. 벤처 투자가 배기홍 님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조사, 데이터, 본인의 경험 등을 기반으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멋진 논리를 만드는데… 나는 이런 걸 헛똑똑이 증후군이라고 한다. … 결국엔 이렇게 해서 투자하지 않은 회사 중에 엄청나게 잘하는 곳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과제를 계획하든 우연에 의존하든 좋은 제품은 나올 수 있으니 괜찮다, 또는 대차게 운이 필요하다는 양비론적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무릇 자기 경험에만 의존하다 보면 남의 생각과 방향이 안될 이유룰 찾기는 정말 쉽다는 점이다. 이 바닥의 일이라는 게 아무리 비슷하고 업무의 영역이 한정되어 있다고 해도, 내가 하지 못했던 경험의 저 너머에는 다른 성공의 방정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조직이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조직 문화, 경영진의 의사결정 방식, 일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역량 등 보이지 않는 조건들도 많다.


경험이 주는 단단한 확신은 주변의 입김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장점이 된다. 그러나 나의 확신이 언제나 ‘옳은’ 판단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넘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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