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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Nov 16. 2024

글쓰기는 내 운명

내 발로 사주를 보러 찾아간 것은 대략 10년 전일 것이다. 신년이 되면 새해 운세를 재미로 보는 것은 늘 하던 일이었지만 본격적인 사주 풀이를 한 것은 그때쯤이다. 회사에서 뭔가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있던 차에, 마침 아내가 어디서 이벤트 특가로 좀 저렴하게 볼 수 있다며 같이 가보지 않겠나 제안했던 것이다. 수원의 옛 도심 어딘가에 위치한 그곳은 평소에 만나는 풍경과 무척 달랐다. 여하튼 그때 들은 말로는 해외에 나가서 살 운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긴 했으니 단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던지기만 한 건 아니었지 싶다. 맞췄으니 용하다면 용하다고 하겠으나 어디에 있는 어느 신점 집인지 지금은 도통 알 수 없다.


사주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후에 한번 더 찾은 적이 있다. 누나가 잘 맞춘다고 알려준 곳이었다. 그땐 무엇을 묻고 무엇을 들었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를 했던 것 같지만 그 메모조차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으니, 무슨 생각으로 복채를 주고 말을 들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별로 중요하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웃기는 얘기지만 이 사람과의 인연은 몇 년 후에 다시 연결되었다. 바로 그 해외에 살던 당시, 다른 회사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었다.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현 직장에서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를 업무나 포지션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에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한참 고민을 하고 있으니 아내가 점을 한 번 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하지만 해외라서 어쩌냐 하던 차에, (누나 소개로 갔던 그 역술가의) 저장된 연락처를 가진 아내가 확인해 보니, 직접 가지 않고 통화를 해도 괜찮다는 답을 들었단다. 게다가 만나지 않으면 더 싸다나 뭐라나. 그렇게 경기도 모처에 있는 역술가와 싱가포르 티옹바루 지역에 있던 나는 서로 통화를 하게 되었다.


물어본 것은 직장을 옮길까요 말까요라는 것이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따로 있다. 그는 내가 ‘하얀 방’ 같은 곳에 있고 무언가 글을 쓰고 있는 게 보인다고 했다. 근무하던 사무실이나 집에서 서재로 쓰던 방이 말 그대로 ‘하얀’ 인테리어라서 놀라기도 했고 글을 쓴다는 것을 맞춘 것이 참말로 신기했다. 그는 계속하던 것을 그대로 하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조언 때문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직장을 옮기지도 않았을뿐더러, 글은 이렇게 꾸준히 쓰고 있다.


나는 무엇을 잘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한 것은 마흔이 훌쩍 넘어서였다. 재능으로써 가진 자산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역량으로써 그것에 대한 고민 말이다. 아내는 종종 편의점 알바를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한다. 특히 물건을 여기저기 어지르지 않고 착착 쌓거나 정리해 두는 능력이 좋기 때문에, 사장이 마음에 들어 할 거라나. 하긴 정리에 관해서는 약간 본능적으로 여겨질 만큼 장점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게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괜찮은지는 모르겠다. 정리의 여왕처럼 나만의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남들에게 가르칠 만큼 이론으로(?) 정리법을 해둔 것도 아니다. 남자치고 잘한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해야 하려나.


회사를 그만두고 경제적 자립을 할 만큼 주식이나 코인에서 꽤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느냐? 그렇지 않다. 매일 경제 관련 뉴스를 듣지만 ’그걸 그리 열심히 들으면 언제 투자 성과를 내느냐’는 타박에 대꾸할 말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경제가 어떻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지 - 그러니까 학문이나 현상에 대한 공부로써 경제에 관심이 높을 뿐, 실물 경제를 통한 경제적 독립 기회는 발굴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주말 아침이었을 것이다. 혼자 있던 차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광고에 뜬 사주풀이를 또 만나게 되었다. 어지간하면 유료 결제로 보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잘 맞춘다는 그리고 좋은 말만 하기보다는 신랄하게 풀이한다는 광고에 혹하여 냉큼 결제를 했다. 실시간으로 바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고 두어 시간 있다가 알려 준다는 (실제로 사람이 풀이를 해주기 때문에) 점에도 은근히 혹했다.


중년 이후의 삶에 대해 풀이한 나의 인생에 대해 이런 얘기가 있어 흠칫했다.

“출판이나 언론, 기획 등 지능적인 특성을 잘 살려 업무를 수행하면 탁월한 능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연구직에 종사하게 되면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날에 천문성이 드니 문필이 뛰어나고 글재주가 있어 관직으로 나가면 성공할 것이요”


아아, 나는 글을 쓰고 연구를 할 운명을 타고났던 것인가. 끌리듯 쓰게 되었던 글쓰기가 실은 그래야만 했던 필연이었으려나. 직장에서 다른 생각 말고 열심히 글이나 쓸 걸. 정리벽이나 재주도 없는 주식 따위는 취미로도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물론 재미로 봤던 운세풀이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크게 믿는 편도 아니다.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취미 생활이 영 맞지 않는 옷은 아니었다는 말을 들으니 괜한 위로를 받는다. 먹고 살만큼 뛰어난 문필을 가졌다면 더욱 좋았겠다 싶은 욕심을 잠시 부려보았다. 그 욕심 내려 놓고 잔잔한 취미로 평생을 가져가도 되겠구나,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해 본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은 이 작업에 타고난 운의 힘을 빌어 본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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