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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Nov 08. 2024

쉬운 살인_easy murder

집행관 놈 집행관 님

웅... 웅... 끽..... 쿵...


SUV 차량이 머플러 굉음을 내며 도로 앞 뒤를 왕복하더니 30대 남자와 그의 아내를 차례로 들이받았고, 분이 풀리지 않는지 제지하던 위 젊은 부부의 노부모마저 연이어 들이받고 도주하였다.


다음날 지역신문과 방송에서는,

'월세 못 내 쫓겨났다고···집주인 가족 차로 들이받은 50대',

'경찰은 피해자 진술 및 CCTV 영상 등을 통해, 피의자가 위험한 물건인 자동차로 피해자들을 고의로 들이받아 크게 다치게 한 사실에 대해 살인미수죄를 적용하여 조사한 후 구속영장 신청 예정'이라는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사람을 부딪쳐 다치게 하거나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자동차라도 '위험한 물건'으로 보고 고의성 여부와 범행 결과에 따라 특수상해죄가 되거나, 상해치사죄란 중형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상해죄는 일반 폭행죄와 달리 피해자의 처벌의사 여부에 따라 기소 여부가 결정되는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가 아니므로 합의나 고소취소가 되더라도 형사 처벌받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함.  


"집행관님, 우리가 집행했던 기장 쪽 부동산명도소송 관련해서, 채무자(임차인)가 자신의 차량으로 집주인을 들이받아 중상을 입힌 사건이 신문이나 방송 뉴스로 나왔는데 보셨어요...?"

담당직원은 신문과 방송을 보고 놀란 듯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그 명도 사건을 우리가 집행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데요?."


집행관은 하루에 적어도 10여 건에서 20여 건 정도 집행 내용이 비슷한 현장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하루 이틀이 지났어도 그 사건 내용에 대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 전 오후에 우리가 기장 쪽에 있는 00 빌라 부동산명도를 집행 한 사건이요."

"왜... 거... 있잖아요. 집행과정에서 나이 드신 빌라 건물주하고, 오랫동안 월세를 지급하지 않고 건물도 쓰레기집 같이 사용해 냄새도 많이 나고, 애완견까지 키우던 50대 김 00 씨가 거주하던 빌라를 명도한 사건요."


사건 피해자들은 빌라 건물주와 건물주 아들 부부이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빌라를 임차하여 거주해 온 임차인으로, 월세 10개월을 연체하며 애를 먹이고도 자발적으로 빌라를 비워주지 않자, 피해자인 건물주가 법원에 부동산명도소송을 청구한 후 판결을 받아 거주하던 곳에서 강제로 퇴거시켰고,


거주지에서 애완견을 데려 나오지 못하고 강제 퇴거당한 채무자가, 다음날 이미 명도 집행된 건물에 들어가 애완견을 데려 나오는 과정에서, 피해자들과 마주치게 되자 말싸움으로 번졌고, 건물주 측에서 주거침입으로 형사 고소까지 하겠다는 말에 채무자는 감정이 폭발하여,  운행하고 온 SUV차량을 몰아 피해자 건물주 아들과 그의 아내를 앞 범퍼로 고의로 부딪치고, 이를 제지하던 건물주 부부마저 부딪쳐 아들은 척추골절, 그의 아내는 다리 골절상 등을 가하고,  노부부마저 부딪쳐 상해를 입혔음은 물론, 차량 범퍼로 건물도 파손한 사건이었다.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은 찰나의 감정이다.

살인이 너무 쉽다.

 

경찰은 피해자 및 목격자 진술, CCTV 영상 장면, 피해자들의 피해 상태 등을 종합해,  가해자(채무자)가 위험한 물건인 자동차를 이용하여 살인의 고의로 피해자들을 들이받아 죽이려 한 것 같다며 살인미수 등 혐의로 조사한 후, 구속영장 신청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몇 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리는 소송 과정에서 어떻게든 승소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여 피 터지게 싸운다.

화병 안에 있는 꽃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시들어 말라 비틀어지듯 감정도 메말라지고, 특히 패소한 피고(임차인 등)의 주거지에서 집행관이 살림살이를 들어내고 강제로 퇴거시키면 분노가 부풀다 터져 버리기에,

집행관은 부동산명도(인도) 사건이나 건물 철거 집행 사건을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당사자들은 집행 초기에는 집행관님... 집행관님... 존칭 하다가, 결국 주거지에서 쫓겨나게 된  임차인이나,  임차인 등의 저항으로 부동산명도 집행을 연기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발생했다는 핑계로 집행관 놈이 채무자 하고 짜고 집행을 연기해 주느니 하면서 집행관 놈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이다.


'남 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님이 된다'는 트로트 노래 가사처럼,  '집행관 님'이 되었다가 '집행관 놈'도 되어버리는 것이다.


집행관은 당사자들 중 누구 하나 승자나 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채권자에게는 명도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채무자에게 이사 비용이라도 조금 주고 건물에서 퇴거시키는 것이 가장 현명하므로 채무자와 협의해 보라고 설득하고,  

채무자에게는 불시에 살림살이를 들어내고 강제로 퇴거에 이르게 되면 기분 나쁘고, 결국 그 소송비용이나 명도비용도 채무자가 추가로 부담할 수 있기에, 이사비용이라도 받고 스스로 퇴거하는 방법이 최고의 해결 방법이라고, 설득 또 설득을 하여 강제집행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니 막아내는 것이다.

부동산명도(인도) 집행 및 대체집행(부동산 철거)은, 채권자가 먼저 집행비용(수수료 및 출장비)을 집행관 사무소에 예납을 하여 집행을 시행하지만, 채권자는 법원으로부터 집행에 들어간 비용확인신청 소송을 통해 판결을 받아, 채무자를 상대로 유체동산 압류 및 매각 절차를 거쳐 채권을 확보하거나, 채무자가 직장인인 경우 근무하는 회사나, 거래은행을 제3 채무자로 하여 급여 및 금융자산을 추심하여 채권을 확보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참에 가해자는 구속된 상태에서라도 참을 인(忍) 자 수 천 번을 되뇌어 뼈를 깎는 반성이 있기를 바라보고, 척추골절상 등을 당한 피해자 가족들도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 일상생활로 돌아갔으면 하고 기원해 본다.


집행관은 고행의 길에 들어서는 채무자를 만나는 직업이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집행관님으로 존중받다가, 때로는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듯 엿보이면 집행관 놈으로 바뀌는 직업이지만, 반대로 친절한 말투 하나, 표정 하나,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실무 지식 하나를 팁으로 알려주어 벼랑 끝에 몰리거나, 높은 빌딩 옥상 난간에 선 위기의 사람들에게 삶의 애착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직업 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럼에도 조금 더 채무자를 위한 집행이라는 믿음을 주거나, 당사자들이 서로 화를 안고 헤어지지 않게 해 주었으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해 본다.


집행관님, 집행관 놈... 나는 대한민국 집행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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