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경기도 쪽에 있는 집행관사무실에서, 채무자 반려견에 빨간딱지를붙인 후 경매로 판매하여, 채권자가 채권 회수를 한 사례를 알고 있다."며, 휴대폰에 스크랩해 둔 언론 보도 내용까지 들이밀며 채무자 반려견에 빨간딱지를 붙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내원 참..., 그런 사례를 누가 몰라서 그러나,,.", 집행관은 모기소리만 하게 중얼거렸다.
그 사건은 채권자의 요구로 반려견 2마리를 압류하였고, 동물감정사가 1마리는 10만 원, 나머지는 15만 원으로 감정한 후, 그 무렵 경매를 통해 감정가격 정도로 판매되었기에, 채권자가 회수해 간 돈은 미미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집행관은 채권 회수 목적으로 반려견에 빨간딱지를 붙이고, 경매를 통해 사고팔고 한다는 게 마음이 찜찜했고, 자기가 맡은 사건의 채권자가 반려견에 빨간딱지를 붙여 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자 쓴웃음만 나왔던 것이다.
며칠 전 채권자는 집행관 사무실에 채무자를 상대로 유체동산 압류 집행을 신청하면서, 채무자가 전화도 안 받고, 조금씩이라도 변제를 해나가겠다고 약속하였음에도 한 번도 약속을 이행한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어쩌다 어렵게 통화가 되었음에도 큰 목소리로 욕만 하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며, 분노의 게이지가 폭발 직전이었다.
채권자의 위임을 받아 집행을 위해 채무자의 주거지를 방문하였으나 폐문부재하여 집행불능으로 처리한 후, 채권자의 사건 속행 신청에 따라 1주일 뒤 2차로 방문하여 인터폰과 문을 두드렸으나, 반려견이 짖는 소리 외에 응답자는 없었다.
집행관은 열쇠기사를 통해 현관문을 강제로 열게 하여 내부로 들어가니, 채무자나 채무자 가족은 보이지 않았고, 채무자가 잘 관리해온 듯 한 푸들 품종의 반려견이 집행관 일행들을 반겨주었다.
반려견은 어둡고 좁은 공간에 하루종일 지내다 보니 사람이 그리웠는지, 집행관 일행에게 접근하여 다리에 오르고 몸을 비비는 등 이쁜 짓을 하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채권자의 다리를 감싸고 비비는 등 집행하는 시간 내내 유독 채권자를 잘 따랐다.
채권자도 개를 좋아해 자기의 집에서도 몰티즈 품종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며, 반려견이 엉겨 붙어 귀찮게 하여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등 귀여워하였다.
# 채무자의 주거지가 폐문부재일 경우 민사집행법 근거에 의해 열쇠기사를 통해 주거지 출입문을 강제로 개방할 수 있고, 강제 집행의 적법성 담보를 위해 채권자 외에 증인(참여인) 2명의 참여하에 집행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런 조건을 갖추지 않고 타인의 주거지에 들어가 압류를 하게 되면 주거침입죄나 방실침입죄 등으로 형사 처벌될 수 있음은 물론, 집행관에게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 위배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집행관은 거실 서랍장 등을 훑어 채무자나 그의 배우자가 함께 살고 있는 주거지인지 점유 여부를 확인하였고, 서랍장에서 채무자 명의로 처방받은 약 봉투, 채무자 명의의 00 은행의 통장을 발견하여 점유를 확인한 후, 그 즉시 거실 벽에 설치된 벽걸이 TV,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6~7개 품목에 압류물표목인 빨간딱지를 붙였으나, 그 가전제품들은 10여 년이 지난 중고품이라 만족할만한 감정가는 나올 수가 없었다.
채권자는 자신의 채권 1,000만 원을 회수할만한 가재도구나 돈이 될만한 물건이 더 이상 확인되지 않자, "나쁜 년, 짜봐야 똥 밖에 없는 게, 친한 친구 소개를 믿고 돈 빌려갈 때는 무슨 재벌집 딸년처럼 행동하더니 어이가 없다"라며 코웃음을 쳤다.
# 타인의 주거지에 있는 유체동산을 압류해서 경매로 처분하려면, 채무자나 채무자의 배우자가 거주지를 점유하고 있는지 채권자 본인의 진술이나, 근거자료(채무자 명의 통장, 약봉투, 국민건강보험증, 주민등록등초본, 사진, 사업자등록증, 신분증 등) 등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집행불능 처리하여야 하고, 채권자가 그 집행 불능에 불만을 토로한다면 법원에 이의신청토록 권유하고 있다.
설령 부동산등기부등본 상 채무자 소유 건물로 등기되어 있다거나, 채무자가 전입세대로 등록되어 있거나, 임대차계약서 상 임차인 명의가 채무자로 되어 있더라도, 실제 점유자로 확인되지 않으면 집행을 하지 않는다.
유체동산 압류 및 경매 절차는 채무자의 동산을 압류하여 경매를 통해 채권을 회수하는 신속한 방법이긴 하나, 중고 가전제품의 감정가가 낮기 때문에 회수의 실익이 많지 않고, 오히려 채무자나 채무자 가족이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가전제품에 빨간딱지를 붙여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심리적 강제 수단의 효과가 더 크다.
특히 음악 전공자라면 악기를, 화물차를 이용해 장사를 하면 그 화물차를, 카페라면 커피분쇄기나 커피머신 등을, 반려견 및 반려묘를 기른다면 반려견 등에 빨간딱지를 붙이기만 해도 심리적으로 채권 회수의 성공률이 더 높아지기에, 그런 세세한 품목의 압류를 요구하는 채권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채무자의 주거지에서 압류 집행절차를 마치고 퇴거를 하려는데, 유독 채권자를 좋아하며 따랐던 반려견이 현관문까지 따라 나와 짖어대자, 그런 애완견을 보고 채권자는 빨간딱지를 붙여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고, 채권자의 요구는 민법이나 민사집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채권자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압류를 요청한다면 빨간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민법 제98조(물건의 정의)는, 물건의 개념을 유체물(형태를 가진 물건)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애완견은 물건이자 전자제품과 같은 유체동산으로 압류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형사법적으로도 반려견 신체를 고의로 다치게 할 경우 상해죄가 아닌 '재물손괴죄'로 의율 하여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집행관은 먼저 채권자의 요구사항에 대해 공감을 표시를 한 후, 반려견을 압류해서 경매로 처분하려면 건강상 문제가 없는지 수의사의 건강진단이 필요하고, 감정가 결정을 위해 동물감정사의 감정 절차도 필요하며, 경매로 낙찰될 때까지 임시로 보관할 애견 호텔 등 보관 장소도 필요하므로, 반려견 한 마리 파는 가격보다 집행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니 빨간딱지를 붙이고 매각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조언을 했다.
설령 채권자가 먼저 비용을 내고 압류한 반려견을 매각한 후, 그 집행비용을 법원으로부터 결정받아 채무자에게 압류절차를 취한다고 해도, 기존 채무도 변제하지 못하는 채무자로부터 집행비용마저 받아내기는 더힘들 것 같으니, 반려견을 압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안내하였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전화를 받지 않고 배 째라 식으로 나오고, 짜봐야 똥 밖에 없음에도 큰소리치고 하는 게 너무 미워, 반려견에 빨간딱지라도 붙은 모습을 보면 반성하고 채무를 변제하지 않을까 하고, 반려견에 빨간딱지를 붙여달라'라고 요구한 것이라며, 그냥 빨리 나가자며 겸연쩍게 웃었다.
집행을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채무자의 반려견은 채권자에게 계속 꼬리를 흔들고 다리 쪽을 비비는 등 귀여움을 떨었고, 채권자는 "강아지 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라며 현관문 안으로 반려견을 밀어 넣어준 후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내내, 낑~낑 대고 서럽게 짖는 소리를 무겁게 들어야했다.
# 2021. 경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었다. 입법 예고안은 98조의 2를 신설해 동물을 물건의 범주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동물을 물건이 아닌, 인간과 구별되는 제3의 지위로 인정하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게 눈에 띄는데 개정 실행 여부는 글쎄다.
마침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빨간 장미를 주지는 못할 망정, 반려견에게 빨간딱지를 선물할뻔한 웃픈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