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명하던 말들이 사라질 때

그때 나는 누구였을까

by 나니

나는 원래 자신감 있는 사람이었다.

어디를 가도 적응을 잘했고,

무슨 일을 해도 최소한 1인분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학교 때 진로를 늦게 결정했다.

취업했을 때, 다른 신입사원들보다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건 무너질 이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촉매였고,

그 과정이 즐거웠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봤고,

배우는 속도가 느리면 시간을 더 썼다.

그렇게 하나씩 채워나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그 덕분에 일은 꽤 즐거웠다.

출근하면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실 사람이 있었고,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자리에 모여 해결 방법을 찾았다.

내가 던진 질문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끄덕임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항상 함께했던 친구도 있었다.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마음이 편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비슷했고,

서로를 배려하는 속도도 닮아 있었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어려움만 있었고, 나는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씩 일에 익숙해질즈음 업무가 바뀌었다.

새로운 팀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더 낯설었다.

새 팀 회의 첫날, 나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나왔을 질문들이

목구멍 어딘가에 걸린 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회의실 프로젝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갑자기 바보가 된 사람처럼.


나는 신입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도움을 계속 받아야 하는 위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조급했다.

빨리 적응해서 최소한 1인분은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일이었다. 시간을 두고 배워야 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퇴근길 운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왜 이것도 못하지?”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구보다 내가 나를 몰아세웠다.


하필이면 건강까지 좋지 않았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면 그것마저도 내 탓 같았다.


관계도 비슷했다.

믿었던 관계에서 균열이 생겼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력했다.

하지만 서로가 서 있는 방향이 정반대라는 걸 점점 인정하게 됐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서로를 모른 체 지나가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대화는 짧아졌고,

침묵은 길어졌다.

함께 있던 시간이 길수록 그 침묵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회사에서의 역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내가 믿고 있던 나.


나를 설명하던 말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불안했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나는 어떤 말로 나를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일도, 관계도, 확신도

이전만큼 또렷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나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