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에서 시작, 라떼는 말야로 끝남
(위 제목배경의 귀여운 댕댕이는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 채 쓱 읽어 내려가는 핸드폰이나 노트북 화면 어디 구석에 뜨는 추천 기사라던가, 클릭하게 만드는 썸네일과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라던가, 혹은 친구나 가족멤버들 사이에서 부지런히 옮기고 나르고 공유되는 링크들, 옆에 항상 있는 남편으로부터 듣는 새로운 소식들..
정말 어떠한 형태나 어떠한 '정보'라는 것은 매일매일 넘쳐난다.
그저 '헐, 정말?' 혹은 '아 그래? 신기하네..' 등으로 기계적으로 대응하곤 하는데, 그러고 나서는 집안일을 하면서, 뭔갈 먹으면서, 혼자 씻다가 문득 이런저런 기억나는 정보들을 짜깁기해가며 그냥 의식의 흐름에 따라 쭈욱 이어나가게 된다.
실감 나지 않는 전쟁의 참혹함, 매번 새로운 기술의 무한한 발전,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를 점령해 가는 것처럼 보이는 K-문화, 그리고 입에 담지도 못할 각종 끔찍한 사건사고들..
그러다 이제 2023년도 한 달 남짓 남았네 하며 엊그제 달력을 넘기다가 문득 마음 한구석이 턱 막혀왔다.
나는 현재 시부모님 회사를 다니다가 10월부로 퇴사하여 11월부터 백수로 만한 달을 꼬박 지내온 상황이다.
백수라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마음 한구석에 지치지 않고 꾸준히 돌아가는 '고민사이클' 같은 것이 있다.
급격하게 변하는 이 시대에, 트렌드에 둔감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는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나게 보았다만 그 오마쥬는 아니다)
어떤 능력을 어떻게 살려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나는 이제까지의 내 경험을 토대로 커리어를 살려 구직을 하고 또다시 월급쟁이로 살 것인가?
아니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맨땅에 헤딩하면 당연히 피가 나겠지만 유혈의 사태를 감내하며 '내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해야 하나?
또 나는 앞으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의 주어진 내 삶을 마주하며 살아나가야 하나.
예전에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진심은 통한다,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면 그래도 도와주자 등등 세상에 대한 호의와 선의로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이모소리 좀 듣고 직장 다니면서 똥밭에서 좀 굴러봤다고, 또 결혼해서 며느리가 되어봤다고 비릿한 웃음과 한시라도 나를 지키려는 본능과도 가까운 적의만 가득한 상태다.
요즘은 다 자기 할 말 또박또박 잘하고, 똑 부러지고 또 스마트하던데.. (유튜브에서 종종 고등학생, 대학생들 인터뷰 영상을 보며 생각했던 점)
바프와 오운완, 미라클모닝, 디지털노매드 등등 블로그와 인스타는 기본으로 다 하면서 협찬도 많이 받고 자기 그림도 그리고 굿즈 제작해서 마켓도 열고 부동산 임장도 다니면서 다양한 활동으로 투잡 쓰리 잡은 이제 기본인 거 같던데...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을 둘러볼 때마다 항상 느끼는 점)
이런 시대에 나는 경쟁력이 있나?
당장 내년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가나..
87년생 토끼띠로 '몇 년생' '무슨 띠'로 자기소개하는 나는 이젠 한없이 구식인가?
구식일 경우 빠르게 변화하는 현시대에서의 경쟁력은 일말의 가능성도 없으려나?
'고민사이클'을 돌리면 돌릴수록 한탄과도 같은 불안감이 점점 더 크게 엄습해 온다.
(*주의! 지금부터 두서없는 '라떼는 말야..'의 시작입니다! 경고드렸습니다!)
낮에는 까만 펜, 밤에는 빨간펜으로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가던 중환자실 종이차트가 EMR로 바뀌고,
연느님이 선전하던 분홍색 햅틱이라는 터치폰이 나왔을 때 즈음 아이폰4가 나오면 살 꺼라는 내 친구의 결심, 그리고 카톡을 처음 깔면서 이제 문자 보내는데 돈 안 든데! 했던 게 내가 병원에 첫 입사했던 2010년이었다.
2020년 전후로 슬랙, 잔디 같은 힙해 보이는(?) 사내 메신저가 상용화되었고 코로나 시기가 겹치면서 줌, 노션 외 각 종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 툴은 점점 더 넘쳐나는 것 같다.
나는 자격증취득을 위해 컴퓨터활용능력 시험도 치르고, 회사로 이직하면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관련 두꺼운 책을 여러 권 사서 열심히 뒤다보면서 파워포인트, 엑셀 및 워드만 좀 잘 다루면 됐었는데.
지금은 다들 개인 패드, 노트북으로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업무를 보고, 전자책을 보거나 삶의 루틴을 기록하며 살아간다.
공영방송에서 나오던 1박 2일, 무한도전 등을 시간 맞춰 본방사수하며 보던 때와 달리 지금은 넷플릭스, 티빙 등의 OTT 플랫폼으로 역시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내가 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되었다.
전공 서적을 한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쪽 손으로는 버스손잡이를 잡으며 겨우내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으며 학교를 다니던 때와 달리, 이제는 양손 무겁게 책을 여러 권 들고 다니지 않아도 전자파일 형태로 모든 걸 다 패드 하나에 넣어서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다.
별안간 클라우드라는 없던 게 불쑥 생겨났다.
구름? 뭐야? 그게 뭔데? 했던 게 이젠 공용 드라이브를 USB, 외장하드 쓰듯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용량 큰 USB나 외장하드 참 갖고 싶었었는데... 플로피 디스크, 공시디는 이제 완전 조선시대 옛말이다.
새로 나온 색의 펜(특히 벚꽃 등의 일제 펜들), 이쁜 편지지와 수첩 등을 하이데이지, 아트박스에서 고르느라 항상 시간에 쫓겼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1300k라는 문구 사이트가 생긴 이후로는 주기적으로 들어가서 구경하곤 했다. (지금은 원모어백..)
사실 지금도 교보문고와 핫트랙스를 가면 입구를 찾아가는 이정표를 보는 와중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둘러볼까, 또 어떤 재미난 게 있을까? 하며 파블로프의 개와도 같은 그런 설렘이 시작된다.
작은 소품샵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던 건 친구와 손잡고 갔었던 이태원의 미술소품(2020년 11월 부로 문 닫음ㅠㅠ)을 처음 방문하고 나서부터다. 그 수많은 인형들과 캐릭터들, 빈티지 제품들로 꾸며진 입구에 들어서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수많은 이태원 외 연남동, 여러 소품샵들을 전전하며 사지 않고 구경만 해도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반지하의 쿰쿰한 냄새나 매캐한 먼지들도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전공 수업이 끝나고 나면 친구와 하숙집에서 잠깐 놀다가 손잡고 남포동으로 건너가 거리 한편에 귀걸이, 헤어핀 등의 자잘한 액세서리들을 파는 가판대들을 하나하나 이 잡듯, 다 뒤지듯 구경하고 다녔었다.
지금 많이 있는 인생 네 컷 스튜디오들처럼 그 당시에는 일본에서 들여온 스티커사진 기계들이 많았는데, 종종 그곳들을 전전하며 스티커 사진을 찍고 펜으로 직접 공들여 열심히 그리고 꾸몄었더랬다.
유치원 다니던 시절의 어릴 때는 뽀뽀뽀를 보며 컸고 8-9년 뒤의 남동생들은 혼자서도 잘해요를 보더라.
일요일 아침에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디즈니동산을 봐야 했고, 오후에는 달려라 하니/천방지축하니, 영심이 혹은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는 게 루틴이었다. 이런 만화들이 그 당시엔 그렇게도 재미났었다.
그 후 네덜란드로 가면서 CartoonNetwork 채널에서 파워퍼프걸, 덱스터의 실험실과 톰과 제리를 즐겨보다가 사춘기를 맞이하던 시기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음악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Spice girls, Destiny’s Child를 시작으로 Backstreet Boys, N sync 등의 보이밴드들을 좋아하다가 갑자기 락밴드와 힙합으로 노선을 변경하며 Blink 182를 시작으로 Limpbizkit, Korn, Dr. Dre와 Eminem을 미친 듯이 사랑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사대주의에 빠져 한국음악을 안 듣는 고집을 부리다(?) 양동근과 드렁큰타이거, 원타임에 홀려서 테이프도 사고 시디도 모았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 되고 노래방을 다니면서 린이나 박화요비 곡들도 많이 듣고 연습해 보고, 다이내믹듀오와 빈지노의 랩들도 가끔 따라 불러보기도 했다.
항상 마무리는 1분이 남았을 때 시작버튼을 누르던 크라잉넛의 말 달리잖아 디제이덕의 Run to you!
노래방 가기 부담스러울 땐 오락실안쪽 깊숙한 곳에 일렬로 놓인 박스형태의 1인실 오래방.. 에 들어가 500원에 1곡씩 연습했었는데. 그게 지금의 코노가 될 줄이야 ㅋㅋ
11월 말에 친구와 코노를 갔는데 또 그새 처음 코노가 나왔을 때보다 시설이나 시스템이 많이 진화(?)했더라.
정말 빨리 변한다.
이제 2024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정말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줄이야.
나는 재수나 휴학 없이 2006년 20살에 입학, 24살인 2010년에 졸업 및 취직, 그때부터 중간중간의 백수시절을 제외하면 어언 10년을 넘게 쭉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빨리 변하고 많이 변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난 계속 무의식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것들은 흡수하고 따라 살 수 있는 것들은 따라가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다.
의식하지 못한 채 삶의 형태가 참 많이 변했다.
휴대폰과 노트북은 없으면 안 되고, 인터넷이나 와이파이는 이제 그냥 공기 같은 존재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여행유튜버들을 보며 나도 그곳을 다녀온 듯한 간접 여행을 한다.
이수미, 조성진 등 돈주고도 볼 수 없는 무대들을, 여러 저명한 박사님들의 강연을 그냥 공짜로 본다.
좋아하는 아이돌그룹도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실컷 덕질할 수 있고, 영화도 요약본으로 10분 만에 다 본다.
깜깜한 방에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서 어디든지 다 가고 무엇이든지 다 볼 수 있다.
이제는 공간적 시간적 유동성과 편함이 늘어나고 그 대신 그 옛날의 불편한 낭만은 없어졌다.
그 낭만이 지금도 남아있었다면 과연 낭만이라고 불렸을까.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과거의 잔유물 같은 고집으로 남아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구식을 고집하는 고집쟁이가 되기 싫은 걸까.
2023년 격동의 시대를 한 달 남겨놓고 내 고민의 사이클을 돌리다가 낭만을 찾는 건 또 무슨 심보일까.